김효순 편집인
김효순칼럼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 의혹을 검증하려 한 〈문화방송〉의 ‘피디수첩’이 무리한 취재방식으로 역공을 당하면서 ‘피디 저널리즘’이 뭇매를 맞고 있다. 기자로서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피디들이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내용을 짜깁기한다는 것, 사실 확인이나 여과 기능이 부실하다는 것, 취재 방법이 강압적이고 취재윤리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이 주된 비난의 근거다. 물론 이런 비판을 받을 구석이 적지는 않다. 하지만 서슴없이 비난을 퍼부어대는 기성 신문이나 방송기자들은 그렇게 목청을 높일 자격이 있는지 겸허하게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피디 저널리즘이 탐사보도의 뿌리를 내린 것은 일반 기자들이 자신의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무엇보다도 클 것이다. 일간신문이나 방송기자들은 일선에서 뛰건 데스크 역을 맡건, 매일 벌어지는 뉴스의 처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한번 관성의 늪에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아주 어렵다. 일상적 직무에서 면제돼 탐사보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더라도, ‘작심삼일’이라고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 기자들의 현실이다. 피디들이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와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것은 내용물과 취재방식에 설사 흠이 있더라도 송두리째 부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필자는 탐사보도와 관련해 부끄러운 기억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 저널리스트들의 정열적인 활동과 성과물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다가 여태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게으름을 계속 상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아사히신문〉이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를 샅샅이 훑어 연재한 르포를 읽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이 첨예하게 맞서 있던 그 시절 일본 열도에는 미군의 군사거점이 거미줄처럼 덮여 있었다. 르포는 철저히 현장 중심으로 기술돼 딱딱한 주제라 해도 읽는 재미를 자아낸다. 예를 들어 지방도시의 외딴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들이 모여 산다. 이들이 출근을 할 때 기자가 따라간다. 이들이 기지 안으로 사라지면 기자는 더는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이들이 어떤 신분의 사람들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주변 취재를 끈질기게 벌여 하나씩 그림을 그려나간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때였으니 국내에서 이런 식의 취재를 했다가는 간첩활동이나 군사기밀 탐지 혐의로 치도곤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취재를 가로막는 장벽들이 많이 낮아졌어도 나는 시도조차 않는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땅에서 제대로 된 탐사보도가 꽃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언론 종사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탐사보도를 하려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재정 지원을 해주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일본의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 가운데 동남아 특히 필리핀에서 온 이들이 많다. 이들은 조직 폭력배나 알선 업체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면서 어렵게 번 돈을 모국에 송금해 가족들의 생활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한 일본 여성은 이들의 일본 내 생활, 출신 배경과 입국경위, 국제결혼의 다양한 양태, 필리핀에 거주하는 가족들의 생활상 등을 세심하게 다룬 르포를 내어 논픽션 부문의 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누군가 이런 주제를 다룬 밀도 있는 르포를 낸다면 얼마나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번 도전을 했다가 사회의 관심과 격려 풍토가 없어서 그냥 좌절해버리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스럽다.
김효순 편집인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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