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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한해의 끝자락에

등록 2018-12-27 17:35수정 2019-11-20 17:33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인들이 가장 애호하는 미국의 시인이라 불릴 만하다. 20세기 초 뉴잉글랜드 농촌의 삶과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하였다는 그의 서정시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은 한이 없어서, 그는 대학을 졸업한 일이 없는데도 40곳 넘는 대학교에서 그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고, 살아생전에 이미 여러 중·고등학교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게다가 국경을 넘어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도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였으니, 그가 일으키는 호소력은 가히 보편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보면 다소 특이한 사실이 눈에 띈다. 예측과는 달리 그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 태생이다. 그곳에서 교사와 기자로 활동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동부로 이주했지만, 그는 농촌이 아닌 도시의 환경 속에서 궂은일을 하며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최초의 시집이 나온 곳도 미국이 아닌 영국이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주신 농장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영국으로 이주한 뒤 일단의 시인들을 만난 다음에야 그의 시작 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는 ‘가지 않은 길’의 영감이 되었던 에드워드 토머스나 호평을 해준 에즈라 파운드와의 교류를 텄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귀국한 그는 농장을 구입했지만 이제 그의 일은 글을 쓰고, 가르치고, 강연하는 것에 국한되었다. 그는 “연필을 사용하지 않고 번 돈은 한푼도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프로스트의 시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농촌의 삶에 밀도 높은 공감이 가도록 서술을 하면서도 자신과 주변의 삶을 되돌아볼 철학적 성찰의 순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한해의 끝자락은 그러한 성찰에 적합한 시간이다. 덜 밟은 길을 택해 운명이 바뀌었을지라도,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은데/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네./ 잠들기 전에 몇 십 리를 더 가야 하는데/ 잠들기 전에 몇 십 리를 더 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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