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팀장 “이 안에 애 있다.” 육아휴직 하는 선후배가 부러울 때면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며 말하곤 했다. 전문용어로 ‘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사회화된 성별이 같은) 비혼 남성으로 그런 축복을 받을 리 만무하건만, 단지 농담은 아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남의 손 잡고 ‘이 안에 너 있다’고 고백한 적이 없다. 독박육아가 되기 십상인 길에 들어서는 사람 앞에서 저런 철없는 소리 하는 걸 보면, 47년째 내 안에서 사는 아이는 분명히 있다. 지구상 그 어떤 복지국가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 ‘태어난 아이만 아이가 아닌데’를 가슴에 품고 아이도 없고, 차도 없고, 집도 소유한 적 없는 완벽한 인생을 살았다. 아이가 없어도 유치원 문제가 남의 일은 아니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깨달음을 얻어서였으면 좋겠으나, 탄력근로 단위기간 연장이 되지 않아도 장시간 회사에 체류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사회정책팀은 교육분야를 담당하는데, 지난 한달 보름 팀장 노릇을 하면서 가장 많이 본 이름은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었다. 처음엔 교육담당 기자들의 기사를 정리하면서 유치원 비리를 막을 방법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는데 한순간 기시감이 몰려왔다. 벼락같은 깨달음은 깨알같은 말씀들과 함께 왔다. “박용진법 통과되면 볼펜도 못 사”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유치원 원장님들의 단체카톡방에서 돌았다는 ‘왜곡 정보’는 익숙한 문법을 반복하고 있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 반대) 설교도 못해’ 같은 팩트체크 당한 문장이 떠오른 것이다. 카톡 중 ‘박용진 3법 통과되면 작은 것에도 횡령죄가 성립된다’는 문자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이슬람/난민을 반대만 해도 잡혀 간다’는 말씀의 변주 같았다. 정서적 향기도 어찌나 비슷한지. ‘그 법’을 절멸적으로 인식하는 태도, 그 효과에 대한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었다. 공청회를 고성으로 저지한 행동주의도 닮았다. 2018년 10월 유치원 관계자들은 박용진 의원실이 주최한 ‘유치원 비리 근절 토론회’를 고성으로 막았고, 2014년 11월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는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의 방해로 끝났다.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 항목에 포함됐다는 게 이유였다. 법 제정을 미연에 방지하는 이런 적극적 행동주의는 도저한 주인의식이 없으면 나오기 어렵다. 유치원은 나의 것(사유재산권을 인정하라), 이 나라는 우리의 것(선택받은 민족의 신성한 나라)이란 인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사회적 기준은 주인인 우리가 정한다는 것이다. 더 세게, 더 크게, 더 높이 소리 지르는 그 기개는 ‘전국구’라는 자신감에 바탕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와 유치원은 전국 곳곳 어디에도 있으니까. 감히 밉보이면 선거에서 무사할까, 지역구 정치인들의 오래된 공포다. 지역에서 ‘우리’의 미래만 지키는, 보편적 기준에 반대하는 전근대와 이별할 때가 됐다. 다행히 이번 비리사태로 일부 사립유치원의 학부모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다. 다수의 상식적 시민이 보편의 편에 섰기에 가능한 변화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인 2018년 12월,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국회에서도 철회는 됐을지언정 발의는 됐던 법이다. 문제는 선거제도다. 때로는 지옥구처럼 보이는 지역구의 압도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도,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절실하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토양을 바꾸는 일이다. syuk@hani.co.kr
이슈비리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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