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정당은 선거 때만 되면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집단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한다. 특히 가장 불만에 싸인 계층에게 과감한 개혁을 약속한다. 그러나 집권하고 나면 말이 달라진다. 선거공약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한 약속부터 하나둘 폐기된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뜨겁다. 핵심 쟁점은 정당 지지율을 국회 의석에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여부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라고도 하는 이 제도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하지만 모든 번잡한 논의는 결국 한 가지 물음으로 수렴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 바람직한 정당정치 구도는 무엇인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계속 양분하는 구도인가, 아니면 둘보다는 더 많은 수의 정당이 각축하는 구도인가? 전자의 손을 든다면 기존 선거제도에 손댈 이유가 없다. 반면 후자를 바란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물론 정치학 교과서는 양당 구도와 다당 구도에 저마다 뚜렷한 장단점이 있으며 따라서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정리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지금 우리가 신자유주의 시대 30여년을 거치고 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는 사회를 잘게 쪼개 놓았다. 한국이 유독 심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엇비슷하다. 부자와 서민 혹은 여기에 중산층을 더한 단순 구도로는 더 이상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의 양상도 다양해졌고, 세대나 성별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기득권자 입장에서는 더는 ‘노동계급’ 같은 덩치 큰 도전자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회 갈등이 복잡해져 관리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사회 상황은 양당 중심 정치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사회 균열이 복잡해진 데 비해 제도정치 내 균열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럼 전통적인 양당 구도가 지속되는 나라에서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양당 정치의 원조 격인 영국에서는 양대 정당, 즉 보수당과 노동당이 극히 다양해진 사회세력들을 한데 품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한다. 그래서 사회세력 간 투쟁과 협상이 당내 파벌 간 투쟁과 타협으로 전이돼 나타난다. 하지만 당내 투쟁은 정당 간 투쟁만큼 투명하지 않다. 정치가 궁중 암투극 일색이 될 위험이 다분하다. 선명한 탈신자유주의 비전을 내세우는 제러미 코빈 대표의 노동당에 기대를 걸면서도 이 당의 집권 이후를 낙관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당 안에 공존하기 힘들면서도 전략상 함께했던 세력들이 집권 후에 오히려 격렬히 대립해 국정을 파국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지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 잘하는 광역단체장이 자기 당 당원들의 공격에 흔들리고 있다. 그 당 소속 공직자 중에서는 가장 개혁적인 인물인데도 당 안에서 핍박을 받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 한 정당에 모여 있는 탓이다. 이쯤 되면 정치 안정에는 양당 정치가 제격이라는 교과서 속 명제를 의심해봐야 한다. 아니, 이것은 기우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양대 정당에는 이런 문제를 회피하는 신묘한 수단이 있으니까 말이다. 양대 정당은 선거 때만 되면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집단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한다. 특히 가장 불만에 싸인 계층에게 과감한 개혁을 약속한다. 그러나 집권하고 나면 말이 달라진다. 선거공약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한 약속부터 하나둘 폐기된다.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고는 가장 힘 있는 자들과 맺은 암묵적 약속뿐이다. 이런 일을 정색하고 해치우는 데는 한국의 양대 정당이 아마 세계 제일일 것이다. 양대 정당은 이런 술수로 신자유주의 이후의 복잡한 사회 상황도 충분히 요리할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것 같다. 어떤 심각한 사회변동 없이도 양당 중심 정치를 마냥 지속할 수 있으리라 꿈꾸는 것 같다. 그러나 망상일 뿐이다. 이미 사회 갈등이 당내 암투로 변질되는 병적 양상이 전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과 2년 전에 엄청난 사건을 겪지 않았는가. 선거에서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약속했지만 집권 후에는 극우적 행태만 보인 정권을 촛불로 태워버린 사건 말이다. 출구는 명확하다. 낡은 양당 정치는 신자유주의와 촛불 이후의 한국 사회에 맞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대중이 만들어낼 새로운 정치질서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질서를 불러올 선거제도를 두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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