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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서민을 위한 경제가 평화다

등록 2018-11-08 18:20수정 2018-11-09 09:39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국면을 여는 데는 크게 성공했지만 사회 개혁에서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아니, 최저임금을 약간 올리고 노동시간을 좀 줄인 다음에는 온통 뒷걸음질뿐이다. 그러면서 “평화가 경제다”라며 모든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이 구호 뒤로 미뤄둔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10월28일에 실시된 브라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가 55.13%를 득표하며 승리했다. 결국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에 파시스트 대통령이 이끄는 극우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이 대외 정책 기조 전환이라는 점이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남미 통합에서 한발 뺐다. 쿠바와 단교하겠다고 한 반면 콜롬비아, 칠레의 우파 정부들과는 친미 동맹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또한 미국을 좇아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하나같이 전임 노동자당 정부의 대외 정책을 정반대로 뒤집는 조치다.

룰라와 지우마 호세프가 이끌던 노동자당 정부는 대외 정책에 관한 한 상당히 진취적인 행보를 보였다. 국내 사회 개혁은 더디고 제한적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룰라는 집권하자마자 미국 부시 정부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구상을 무력화했다. 대신 베네수엘라 등의 좌파 정부들과 함께 남미 통합을 추진했다. 남미 대륙에서 미국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려 한 것이다.

남미만이 무대가 아니었다. 노동자당 정부는 이라크 전쟁 같은 미국의 중요한 선택에 매번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국가들 간 협력을 강화해 미국의 전 지구적 패권을 견제하려 했다. 또한 팔레스타인을 편들며 중동 문제에도 끼어들었다. 그럴수록 브라질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져갔다. 이런 브라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까지 노렸으니 미국에는 노동자당 정부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중남미에 좌파 집권 붐이 일던 2000년대에 베네수엘라는 흔히 ‘급진 좌파’ 노선의 대표로, 브라질은 ‘온건 좌파’ 노선의 대표로 분류되곤 했다. 전자는 미국과 대결하는 반면 후자는 타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진짜 위협으로 느낀 쪽이 과연 ‘급진 좌파’ 베네수엘라였을지 아니면 ‘온건 좌파’ 브라질이었을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모르긴 해도 아메리카 대륙의 또 다른 대국 브라질의 도전이야말로 실질적 위험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브라질 국내외의 반대 세력이 치열한 작전 끝에 마침내 노동자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재집권을 필사적으로 저지한 근본 이유 말이다. 국내 개혁만 놓고 보면, 노동자당 정부의 정책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권력관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대외 정책은 달랐다. 노동자당 정부는 무엄하게도 지정학적 권력관계의 심대한 변화를 추구했다. 이 시도는 이번 대선을 통해 확실하게 사망 선고를 받았다. 보우소나루의 아들이 선거운동 기간 중에 트럼프의 책사이자 극우 이념 전도사인 스티브 배넌과 찍은 밝은 미소의 사진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우소나루 정권의 등장이 어떤 세력들이 힘을 합해 만든 결과이며 과연 누구에게 이득인지 말이다.

이런 브라질의 경험에서 우리는 두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지정학적 권력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는 국내 개혁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동전 반대면 격인 또 다른 교훈이 있다. 그것은 국내 개혁 성과가 미흡하면 국제정치에서 아무리 큰 성과를 거둘지라도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야말로 이 교훈에 눈을 번쩍 떠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국면을 여는 데는 크게 성공했지만 사회 개혁에서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아니, 최저임금을 약간 올리고 노동시간을 좀 줄인 다음에는 온통 뒷걸음질뿐이다. 그러면서 “평화가 경제다”라며 모든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이 구호 뒤로 미뤄둔다.

그러나 과연 평화는 경제인가? 오히려 지금 내놓아야 할 답은 “서민을 위한 경제가 평화다”가 아닌가. 노동권 보장, 복지 확대, 경제 민주화야말로 평화다. 이런 국내 사회 개혁에서 돌파구를 연 뒤에야 지정학적 구조의 개혁도 굳건히 추진할 수 있다. 그래야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이 역사의 후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한때 미국 패권에 맞선 가장 지혜로운 도전자로까지 떠올랐으나 이제는 과거보다 더 심한 예속의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저 나라와 같은 후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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