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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혜신칼럼] ‘피디수첩’ 때리기의 봉건성

등록 2005-12-12 18:44수정 2006-01-17 01:54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칼럼
사업실패로 다급한 사정에 몰린 어떤 사람이 비장한 결심을 하고 자기의 전재산 30만원을 털어 로또복권과 극약을 함께 샀다. 일등 당첨을 바라는 그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런 사람을 향해 자살에 대한 비윤리성을 설파하고 810만분의 1에 불과한 일등 당첨 확률을 환기시켜 주는 행동은 잔인하고 무책임해 보일 수 있다.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여러 문제를 제기한 ‘피디수첩’이 그런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한 야만적 행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평생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로 1%의 희망이라도 생겼었는데, 피디수첩이 그 실낱같은 희망의 싹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려 한다며 분노한다. 연구 과정에 약간의 문제가 있고 설령 알려진 것만큼의 연구성과가 없을지라도 작은 가능성의 불씨까지 꺼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간절함에서 연유한 분노를 이해못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그런 절박함에 빗나간 자부심을 덧대며 번져가는 누리꾼들과 언론들의 획일주의적 에너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피디수첩과 〈문화방송〉을 향한 그들의 뭇매는 조악하고 폭력적이다. 피디수첩의 광고주를 압박해 전면적인 광고중단을 성공시킨 뒤 문화방송 취재에 대한 비협조부터 경영진 퇴진과 문화방송 폐지까지 원시적인 주장들이 난무한다. 취재윤리 위반을 시인하는 문화방송의 대국민 사과가 나오자 사태는 더욱 광폭하게 치닫는다. 일부 언론들은 피디수첩팀과 피디들을 범법자로 몰아가며 전문가와 누리꾼들을 등에 업고 형사처벌을 조장하는 듯한 보도를 양산했다.

그 과정에서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이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이들은 예외없이 돌팔매를 맞고 있다. 대역죄인으로 몰려 처형당한 이의 주검을 수습하는 일만으로도 똑같은 죄를 묻는 봉건군주시대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주동황 교수의 말처럼 황우석 교수의 능력이나 연구성과에 대해 국민이 모두 합의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반대의 일탈적인 주장이 나왔기 때문에 피디수첩의 방송 내용에 대한 충격과 반발이 더 컸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인식과 다르고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해서 상대의 비판 자체를 폭력적으로 원천봉쇄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26년째 복역 중인 존 레넌의 살해범은 모범적인 수형생활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가석방 심사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다. 살해대상이 만인의 우상 비틀즈의 멤버 존 레넌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존 레넌을 살해한 것과 무명씨를 살해한 행위는 본질적으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만 정서적 영역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그동안 피디수첩은 종교, 부정부패, 신문개혁, 환경감시 등 공론화가 필요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집요할 만큼 천착해 왔다. 물리적 성역뿐 아니라 심리적 성역에 대한 도전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유독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해서 이렇듯 기이한 폭력에 노출될 이유가 없다. 취재과정에서의 잘못과 줄기세포에 대한 문제의식은 별개다. 문화방송에 대한 여론의 뭇매는 엄정한 훈계와 그에 상응하는 벌로 끝내면 될 일에 대해서 칼로 찌르는 행위처럼 부적절하고 무자비하다. 문화방송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한가’라는 질문보다는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공감한다.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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