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세상읽기
오래된 논쟁거리긴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회과학자들은 사회현상에 대한 진리의 획득과 관련해서도 자연과학의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같은 방법을 사용할 때 같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재생가능성의 준칙’은 자연현상에 비해 훨씬 유동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지식의 진위를 검증할 때에도 변함없이 강조된다. 하지만 내가 산출한 지식을 다시 재생해보라는 요구가 제기된다면, 그것도 과학 선진국들이 질시와 경외의 눈초리로 주목하는 와중에 비전문가 집단에 의해 반 협박조로 제기된다면 그때 느낄 참담함과 자괴심은 얼마나 클까.
그런 어려움을 딛고, 재검증을 요청한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용기와 결단을 격려하고 지지한다. 또한, 크나큰 부담을 안고 줄기세포 연구결과에 대한 재검증을 실시하기로 한 서울대의 결정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설치될 조사위원회는 과학 선진국들이 가진 질시의 눈초리와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잘 인식하고 있을 터이니, 무리와 성급함 없는 일처리를 최우선의 덕목으로 삼고 외부의 관심에 의연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논문을 재검증할 적절한 방식과 절차를 찾아야 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피디수첩’의 과욕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결과도 정당하지 않다는 점은 과학뿐 아니라 언론에도 적용되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용기있는 취재의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지만, 황 교수의 연구팀도 과학자답게 처신해야 한다. 황 교수팀의 연구에는 앞으로도 상당한 액수의 국민 세금과 유능한 연구 인력이 투입될 것이다. 이미 그것은 한국 과학계 전체의 연구 성과이기에 터럭 같은 의혹이라도 제기된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재검증되어야 한다.
이제는 모든 일을 조사위원회에 맡기고 언론과 누리꾼들은 물론 황 교수의 연구팀도 결과를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벌써부터 조사의 범위나 조사위원회의 구성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겐 진중함이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가 보다. 조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판단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지,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지금부터 여론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논문 보충자료의 데이터에 대해 제기된 사진 중복이나 디엔에이 지문자료 등에 관한 진상파악을 통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하면, 자연스럽게 그 다음 단계의 조사내용이 결정될 것이다.
조사위원회의 구성도 마찬가지다. 황 교수 연구팀의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재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꾸리면 될 것이고,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외부 전문가가 배제된다면 제 식구 감싸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심은 과학적 지식의 생산과 검증이 가지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며, 거기에 종사하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모욕적 언사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 진행될 검증 과정에 대한 논란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증폭되면 될수록,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 과학 공동체와 대학의 신인도는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는 수십년 동안 황 교수가 그래왔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밤낮을 잊고 열악한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수많은 젊은 과학도들과 어린 후학들에겐 치명적인 상처가 될 것이다. 미약하나마 움트기 시작한 토종 자연과학의 소중한 싹이 온전히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는 점, 바로 그 희망을 맨 앞에 놓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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