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핼러윈이 성인과 순교자들을 기리는 기독교의 축일에서 비롯되었는지, 한 해의 수확에 감사하는 켈트인들의 축제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어쨌든 오늘날 그날은 어린아이들이 대접받기를 기다리는 명절을 넘어 어른들까지도 기괴한 복장으로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파티를 벌이는 기념일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러시아의 문학비평가 미하일 바흐친은 그러한 축제의 분위기에 폭동의 요소가 내재해 있음을 밝혔는데, 실지로 폭동으로 귀결된 핼러윈이 있었다. 1913년 10월31일 인디애나폴리스의 중심가에서 노조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이 파업을 지지하는 집회를 했다. 그 가운데 핼러윈의 분위기에 취한 자들이 전차를 공격하여 운전자들에게 동조하라고 강요했다. 당시 그 인디애나주 주도의 가장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었던 전차 회사에 노조가 결성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던 것인데, 이튿날 상당수의 운전자들이 결근했다. 절반 정도의 전차만이 정상으로 운행되었는데, 시위자들이 파업을 이어나가 전차를 파괴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케이블을 절단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그다음 날에는 폭동으로 비화하여 시위하는 자들과 진압하는 자들과 구경꾼 수백명이 부상을 당하고 여섯명이 사망했다. 선거일은 다가오는데 경찰도 속수무책이어서 마침내 주지사가 계엄을 선포하고 국방군 투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성난 군중은 오히려 주 의사당을 포위하고 그들의 불만 사항을 열거하며 군대의 철수를 요구했다. 결국은 주지사가 군대의 철수를 약속하며 노동자들이 업무로 복귀하기를 간청하여 일주일간의 폭동은 끝을 맺었다. 이 폭동은 11월 말에 열린 인디애나 주의회에서 주 최초로 최저임금제와 정규 노동시간을 확립하고 사업 장소의 안전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계획이 추진된 것도 그 부수적인 효과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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