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고대 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비잔틴 학문의 중심지였다. 그곳에 히파티아라는 여성이 있었다. 생애의 기록이 남은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 천문학자로 알려져 있다. 교육자로도 명성이 높았다.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그 종교는 인정해 제자 대부분이 신자였다. 훗날 주교가 된 제자가 보낸 편지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진면목을 보여준다. 당대의 한 역사가는 부끄럼 없이 남성들의 집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그의 존엄과 덕성을 찬양했다. 학문으로 일가를 이룬 아버지 테온을 수학에서 능가했다는 평가까지 받던 그는 자태도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흠모하던 한 남자가 학생임을 빙자해 구애했다. 평생 순결을 지킨 그는 거절했지만, 집요하게 접근하자 월경혈이 묻은 천 조각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해 물리쳤다고 한다. “당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오. 당신은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할 줄 모릅니다.” 상담자로도 탁월했다. 그러나 그 능력이 그의 명을 재촉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정치와 종교의 권력이 맞붙어 파벌과 정쟁이 심했다. 그 진앙에 새롭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된 키릴로스가 있었다. 그는 권력욕이 심한 사람으로, 로마에서 파견한 지방 장관 오레스테스와 맞섰다. 오레스테스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도시에서 추방하려는 키릴로스를 저지하려 했다. 히파티아는 그런 오레스테스에게 틈틈이 조언했다. 키릴로스 휘하의 광신도 무리가 일을 저질렀다. 마차를 가로막고 히파티아를 끌어낸 뒤 옷을 벗기고 살해했다. 살점까지 갈가리 조각냈다. 히파티아의 죽음은 동로마제국 전역에 충격이었다. 조사가 이루어졌고 키릴로스는 뇌물로써 심한 처벌은 모면했다고 전해진다. 기독교도가 아니었던 히파티아의 행적은 성인전에 편입되었다. 그의 삶과 죽음이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의 것으로 윤색된 것이다. 기독교도에게 살해된 히파티아가 이교도에게 살해된 순교자 카타리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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