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신냉전? 냉전 종식 이후 유령처럼 출몰하던 말이지만 이번엔 진짜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심상찮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노골화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지난 4일 허드슨연구소 연설은 선전포고와 같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고위 관리들의 대중국 위협 가운데 가장 강도가 세고 폭이 넓다. 그를 비롯한 대중국 강경파의 입지는 지금이 가장 단단하다. 중국은 용납해선 안 될 ‘현실의 적’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 인식이다. 펜스 연설이 잘 보여주는 이들의 논리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미국은 이제까지 낙관적 기대를 갖고 중국을 ‘키웠다.’ 1970년대 수교가 출발이다. 소련 해체 뒤엔 미국 경제를 중국에 개방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끌었다. 미국의 투자는 지난 17년 동안 중국 경제가 9배로 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중국을 다시 세웠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은공을 정면으로 배신했다. 한해 수천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내는 이면에는 불공정한 관세, 수입 제한, 환율 조작, 기술이전 강제, 지식재산권 절도, 산업보조금 등이 있다. 나아가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미국 경제 지도력의 기초인 지식재산을 빼앗아가려 한다. 중국은 군비를 확장해 육해공과 우주 등 모든 영역에서 미국 군사력 약화를 시도한다. 중국은 국내 통제를 강화해 ‘오웰식 체제’ 구축을 꾀한다. 중국 내 기독교·불교·이슬람교 신자에 대한 억압과 처형도 늘고 있다. 트럼프가 이전 정부와 달리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게 세번째 논리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을 겨냥해 ‘강국 경쟁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또 군비를 대폭 늘려 핵무기 현대화, 전투기·폭격기·항공모함 개선, 우주군 창설, 사이버전력 강화 등을 통해 사상 최대 강군을 만들고 있다.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관세를 물리는 무역전쟁은 이미 중국 증시의 상당한 폭락을 끌어내는 등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마지막 논리는 그런데도 중국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거꾸로 ‘트럼프 죽이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6년 대선 때의 러시아 이상으로 미국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미국 내 중국 단체와 선전기구, 친중국 미국 기업인·학자 등을 통해 여론전을 벌이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선거구에 무역 보복을 해 대통령 교체를 시도한다. 중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미국 기업에 대한 압박도 강해진다. 이런 논리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중국 무릎 꿇리기가 그것이다. 펜스는 ‘세기의 싸움’을 주도하는 트럼프 정부에 대해 미국인의 지지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국 신냉전 선언은 트럼프 정부 임기 후반을 내다보는 국가전략이자 다음달 6일 중간선거 전략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중국위협론을 단순화하고 강화한 이런 공세는 일정한 호소력이 있다. 트럼프를 찍은 국내 민족주의적 백인 중하층 외에, 미-중 대결에 불안해하는 미국 기업과 중국의 대외 확장을 우려하는 일본·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 나라 등이 잠재 지지자다. 하지만 신냉전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논리에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예컨대, 미국은 중국이 팽창적으로 군비를 늘린다고 하지만, 중국 국방비는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고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도 미국(3.5~4%)이 중국(1.5%)보다 훨씬 높다. 미국이 중국의 체제와 자생력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펜스 연설 뒤 중국 정부는 “중국의 경제 발전과 과학기술 진보는 모두 개혁과 시장개방, 인민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를 경원하는 지구촌 분위기가 바뀌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중국 신냉전 논리는 이제까지 트럼프가 동맹국 등 모든 나라에 보인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세계가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전방위 무역전쟁을 펼친다. 미국의 총체적 힘은 여전히 중국보다 훨씬 강하지만 국제사회를 자신의 편에 서게 하지 못하면 공격을 계속 강하게 끌고 가기 어렵다. 미-중 신냉전은 한반도 관련 사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핵 문제 해결 노력에서 중국의 협력을 얻기 어렵게 하고, 미국이 대중 대결에 집중하느라 비핵화 동력이 줄어들 수 있다. 우리가 미-중 대결 진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만,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대응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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