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8세기 이탈리아에는 특이한 직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결혼한 귀부인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남자들로서, 그들의 임무는 통상적인 경호를 넘어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까지 확대되어 이들과 관련된 성적 추문도 일어나곤 했다. 이것이 사회적 관례로 자리잡아 미혼인 청년 귀족은 사실상 남편이 있는 귀부인의 시종 기사의 노릇을 했던 것이다. 이들을 ‘치치스베오’라고 불렀는데, 그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정당성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오늘날의 이탈리아인들조차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 관행을 두고 시스몽디와 같은 역사가는 16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역사가 옛 영광을 잃고 타락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리는 역사를 보면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이 옛날 어디에선가 일어났었다는 사실에 놀라는데, 꼼꼼한 조사에 바탕을 둔 연구 결과를 읽고 내막을 알게 되며 다시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콰데르니 스토리치>처럼 명망 높은 학술지의 편집위원이었던 피사대학교의 로베르토 비조키 교수가 그런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는 일기, 편지, 문학 작품 등등의 다양한 자료를 훑으며 이러한 관행이 계몽사상이라든가 여성권의 신장과도 연결되는 현상이었음을 밝힌다. 단적으로 말해 치치스베오는 추근거리는 구애자들로부터 유부녀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맡았고, 남편이 폭력적 성향이 있을 경우 가족들의 지지까지 받아가며 남편의 폭행을 막아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남성들에게만 (성적인) 자유와 선택의 권리가 주어졌던 시절에 여성의 독립성을 표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근자에 비조키 교수에게 수학한 한국인 제자가 이 책을 번역하여 출간했고, 저자는 제자에 대한 애정을 넘어 한국인 독자에게 이 책이 갖게 될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서문을 덧붙였다. 그 흥미로운 세계로의 여정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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