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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데르수 우잘라

등록 2018-10-04 18:00수정 2018-10-04 19:21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프는 1902년과 1907년 두차례에 걸쳐 북동 러시아 지역을 탐사했던 제정 러시아의 군인이었다. 그는 시베리아 지역의 식물군과 토착 소수 인종의 생활 방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널리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1923년에 발간된 책 <데르수 우잘라>였다.

탐사 초기에 우연히 마주쳤던 골디족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기억들을 담은 그 책은 두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75년에 만든 두번째 영화는 모스크바 영화제의 금상을 받았다.

아르세니예프의 부대원들과 마주친 데르수는 그들의 길잡이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다. 데르수는 정령신앙을 믿는다. 태양에도, 강에도, 바람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그만큼 그는 자연과 동화된 삶을 산다. 그 태곳적의 미개한 신앙을 믿는다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과 밀착된 삶에서 나오는 선한 지혜는 아르세니예프와 그 부하들의 신뢰를 넘어 존경을 사게 된다. 그뿐 아니라 노한 자연과 마주친 위기의 상황에선 기지를 발휘한 활동력으로 아르세니예프의 생명을 구한다.

노령으로 인한 시력의 약화는 사냥꾼에게 치명적이다. 데르수는 자신이 거주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께 살자는 아르세니예프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나무를 자르는 것도, 야영을 하는 것도, 모닥불을 피우는 것도, 사격 연습을 하는 것도 불법이다. 낙담한 데르수는 숲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시력이 감퇴된 그를 위해 아르세니예프는 조준이 간편한 최신식 라이플을 선물한다. 결국 데르수는 그 총을 탐낸 도적에 의해 살해된다.

그 영화의 힘은 이 짤막한 요약에 있지 않다. ‘도시와 숲의 대비’라든가 ‘운명의 아이러니’처럼 그에 부수하는 철학적 논평에 있는 것도 아니다. 시종 담담하나 도도하게 전해지는 자연과 공존해야 할 필요성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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