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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시인이라는 조롱

등록 2018-09-06 17:50수정 2018-09-07 10:19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티투스 마키우스 플라우투스는 고전적인 라틴어가 정립되기 이전 초기의 라틴어로 희극 작품을 썼던 극작가였다. 그가 썼다는 130여편의 희곡 중 우리에게 온전하게 전해지는 것은 20개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양피지에 필사로 기록을 남기던 시절에 양피지를 지우고 그 위에 다른 책을 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한 수도승이 성서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석을 기록하기 위해 열심히 플라우투스의 작품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 기술로 어느 정도 복원은 시켰지만 그것이 완전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전해지는 작품들만으로 그는 큰 명성을 얻었고, 후대의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무대를 만드는 목수로 일을 하다가 그리스의 연극을 취미 삼아 연구했던 그는 해운 사업에 실패한 뒤 극작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스의 작가 메난드로스를 모방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의 희극과 큰 유사성이 있지만, 그것을 로마 시민들의 일상으로 바꾸어 그들에게 연극의 세계를 알려준 것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인정받고 있다. 이미 자신의 시대에 플라우투스라는 이름은 연극에 있어서 성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희극의 묘미는 언어유희를 통해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로 기성의 권위를 조롱하는 데 있다. 로마 평민을 대변한 그에게는 귀족이 조롱의 대상이었다. 귀족들은 법을 만들면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의 문구에 어떠한 가감도, 어떠한 변경도 없이 정해진 방식대로 정해진 숫자의 단어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렇기에 법을 “노래”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의 <당나귀 희극>에는 등장인물이 기생충 같은 식객 하나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이유는 단지 그가 법률의 정해진 용어라는 보호 장치를 “노래하듯” 읊어댔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사법 정의는 어디로 가고 어찌 노래만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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