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앨런 존 퍼시벌 테일러는 유럽 현대사가로서, 보통 A. J. P. 테일러라고 불린다. 그는 외교사의 전문가로 많은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텔레비전 방송을 통한 강좌로도 유명해, 학문적 엄격성과 대중적 인기를 겸비한 역사가라는 평을 받는다. 그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저서에서 피력한 주장에 따른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호 비방에 가까운 언쟁도 있었다. 맨체스터대학교에서 명강의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처음으로 중요한 논쟁에 휘말린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이라는 저서 때문이었다. 그는 히틀러와 그 일파에게 전쟁의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도피처라고 논하며 히틀러는 이전 독일의 정치가는 물론 다른 나라의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국가를 강하게 만들기 원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이 가졌던 반유대주의 정서를 함께했을 뿐이며 그에게는 단지 권력 추구만이 목표였다는 것이었다. 이 논쟁의 결과로 그는 옥스퍼드대학의 강의를 잃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저서를 내던 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영역을 넓혔다. 텔레비전에서는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그의 논쟁 태도에 주목했다. 최대의 논쟁 상대는 또 다른 역사가 휴 트레버로퍼였다. 테일러가 10년 이상 연상임에도 그는 젊은이를 대변한 반면, 트레버로퍼는 노년층을 대표했다. 트레버로퍼가 포문을 열었다. “당신의 책이 역사가로서 당신의 평판에 해를 입힐 것이오.” 테일러가 반격했다. “당신의 비판이 역사가로서 당신의 평판에 해를 입힐 것이오. 당신이 받은 평판이라는 게 있다면.” 대중은 토론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악의에 찬 언사의 왕래를 즐겼을 뿐이다. 그렇게 그는 20세기 영국의 가장 유명한 역사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세계사의 사건들에 관심이 많았던 역사가였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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