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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의적의 탄생

등록 2018-08-23 18:12수정 2018-08-24 09:29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노상강도에도 등급이 있었다. 행인을 길거리에서 터는 자들은 “길 털이” 정도로 불렸던 반면, 말을 타고 여행객을 습격하는 자들은 “길의 기사” 또는 “길의 신사”와 같은 이름으로 불려 사회적 신분도 더 높았다. 그들은 여행객의 재물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 때로는 왕령의 숲에 서식하는 사슴을 노리거나 말을 도둑질하기도 했다. 딕 터핀은 그런 “길의 신사” 중 하나로 간주된다.

왕령의 숲에 잠입하여 사슴을 사냥할 때는 보통 얼굴을 검게 칠하고 매복을 한다. 이들로 인한 피해가 심해지자 영국에서는 1723년에 “검은 얼굴 법”을 제정하여 범법자들을 사형에 처했다. 현대의 고전인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집필한 역사가 에드워드 톰슨은 사슴 밀렵과 같은 사소한 범죄에 극형을 언도한 그 법을 통해서 18세기 전반의 영국 전체를 조망하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터핀은 도적단에 가입하여 강도 행각을 벌이며 상인, 목동, 하인 등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잔인한 악행을 거듭했다. 사슴 밀렵과 말 도둑질에 나선 것은 그의 조직이 와해되고 난 뒤였다. 그럼에도 그는 오늘날 의적으로 미화된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런던에서 요크까지 200마일에 달하는 길을 하룻밤에 말을 타고 달렸다는 다른 범죄자의 행동까지 그에게 따라다니는 전설이 되었다.

왕령의 숲을 확대하고 그들만의 전유물로 만들려던 고관대작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의적 탄생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말 도둑도 사형에 처해졌는데, 평민이 어떻게 말을 소유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이유로 터핀은 부자들만 공격하는 의적으로 바뀐 것이다. 사실 터핀이 교수형을 당한 이유도 두건의 말 도둑질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그의 전설이 만들어졌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원하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사실과 허구가 적절히 결합된 소설이 사형 집행 직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니얼 디포까지 가세한 터핀 윤색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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