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영문학 교사인 아버지는 웨일스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중세 이래 웨일스에 구전된 <마비노기온> 전설의 등장인물 “덜란 아일 돈”에서 따와 아들의 이름을 “딜런”이라 지었다. 영어로는 “딜런”이지만 웨일스어로는 “덜란”이라 발음된다. 아들을 특히 아꼈던 어머니는 그 발음이 영어로는 “따분한 사람”이란 뜻으로 받아들여질까 걱정했고, 아들 역시 자신의 이름을 ‘딜런’이라 불러주기 원했다. 그의 삶은 결코 따분하지 않았다. 시인 딜런 토머스는 기행과 질병으로 점철된 짧은 삶을 살았다. 천식과 기관지염으로 병약했던 그는 독서와 시 쓰기를 좋아했다. 지역 신문사의 기자였던 그는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신문사 근처의 카도마 카페는 그들이 모이던 장소였다. “카도마 갱단”이라 불리던 그들은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그레타 가르보 등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며 창조적 열정을 달랬다. 그 자리에 빠질 수 없었던 것이 술이었으며, 토머스는 허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거의 폭주에 달하는 음주 습관을 키웠다. 결혼도 이례적이었다. 친구의 연인이었던 무용수 케이틀린과 첫눈에 반해 곧 결혼했던 것이다. 만난 지 10분 만에 침대에 누웠다고 토머스는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결혼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이름이 꽤 알려졌다 할지라도 시인은 여전히 가난한 직업이었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더 큰 궁핍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통한 시 낭송으로 또 다른 수입원을 찾은 그는 미국으로 시 낭송 순회공연을 떠났다. 그곳에서의 음주에 따른 기행은 궁극적인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미 “저주받은 시인”이라고 불렸다. 영화 <인터스텔라>로 유명해진 그의 시는 임종을 맞은 아버지를 위해 쓴 것이다. “안락한 밤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시오. 날이 저물 때 늙은이는 불타고 아우성치는데, 죽어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십시오.” 젊은이에게도 힘을 주는 시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