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만가

등록 2018-08-02 18:38수정 2018-08-03 09:06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특강이 시작된 뒤 곧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 숨어들듯 자리 잡았다. 간간이 청중의 웃음을 자아낼 만큼 기지 넘치는 발언이 많았지만 내용은 진지했다. 수업 시간에 자연법 사상에 대해 공허하게 이론을 읊어대는 나의 강의보다 훨씬 훌륭했다.

왜 정부가 의료나 교육이나 공공안전의 문제를 민간 기관에 맡기면 안 되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국민 모두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 추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설 기관에 맡겨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회가 있기 이전에 자연이 있었고, 인간은 그 자연 속에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남으로써 인간은 사회에서 규정한 권리보다 먼저 존재하는 자연권을 갖는다.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마다 그 천부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논리를 그는 로크나 루소의 예를 들지도 않으면서 훨씬 간명하게 설파했던 것이다. 이후 영화를 통해 민주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교양 강의나 서양 사상사에 대한 전공 강의에서 나의 설명의 많은 부분은 그 특강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나의 말로 바꾸어 학생들에게 전달한 것에 불과했다.

그 강의실의 뒷자리에서 연단의 노회찬을 바라봤던 것이 내가 그에게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경험이었다.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꼈던 것 같다. 강의뿐 아니라 이 칼럼을 쓸 때도 그를 염두에 두었던 적이 많았다. 국가의 본질에 대한 니체의 주장을 말할 때 특히 그러했다. 합당한 국가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지 않으며, 국가는 윤리적·문화적 주체로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근대의 국가는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바뀌어버렸을 뿐이라는 니체의 개탄에서도 그를 봤던 것이다.

터져 나온 허탈한 울음도 그런 심정적 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가를 대신하여 대다수 국민을 위해 온몸으로 살아왔던 그가 떠나는 길에 보잘것없는 이 글 하나 올린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 청문회’ 증언, 모두 윤석열을 가리킨다 [1월23일 뉴스뷰리핑] 1.

‘내란 청문회’ 증언, 모두 윤석열을 가리킨다 [1월23일 뉴스뷰리핑]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2.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3.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4.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극우 테러는 어디서 왔을까? [세상읽기] 5.

극우 테러는 어디서 왔을까? [세상읽기]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