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901년 프랑스의 고고학 발굴팀이 오늘날 이란의 후제스탄주에서 돌기둥을 발견했다. 높이 2m가 넘는 그 기둥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이듬해에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역사를 연구하던 한 수도승이 그 문자를 해독했다. 그리하여 3600여년을 건너뛰어 고대 바빌로니아왕국의 실체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함무라비법전인데,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법 조항이야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분규를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니, 282개에 달하는 조항마다 인간사의 거의 모든 측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자료로서는 그렇다 할지라도 법 자체로서는 전근대적인 법률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을 받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 조항이라든가 신분별로 차이를 둔 처벌 조항이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분히 읽어볼수록 그 진가는 새롭게 음미되어야 함을 확신한다. 그 법이 신으로부터 왔다는 것도 전근대성으로 지목받는 이유 중 하나지만, 그 법의 목적은 “정의로운 자들이 지배하여 사악한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박멸하기 위한 것”이다. 인류의 초창기 가부장들마다 노예는 물론 자식들에게도 왕처럼 군림할 때 이 법은 처벌의 한계를 명문화했다. 차별 조항이라지만 “무전 유죄, 유전 무죄”는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 아닌가? 법관의 책임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 판결을 내렸는데, 그것이 법관의 잘못으로 소송 당사자에게 피해가 갔음이 훗날 밝혀지면 그 법관은 피해액의 12배를 배상해야 하며 법관직을 영원히 잃는다. 과실에 의한 판결에도 이런 책임을 부과했는데, 권력자에게 부역하며 법의 정의를 유린한 자들에게는 어떤 처벌이 내려져야 할지 상상조차 못 할 일이기에 그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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