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아주 먼 옛날 동네에서 친구들이 모여 축구를 할 때면 공을 가장 잘 차는 두 명이 나서서 편을 나눴다. 그들이 번갈아가며 한 명씩 자기편에 데려가는데, 그것도 공을 잘 차는 순서였다. 잘 차지 못하는 두 명이 마지막으로 남는데 그 둘은 자동적으로 골키퍼가 되었다. 골목길의 축구에서조차 골을 넣는 기쁨과 그에 따르는 우쭐거리는 마음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레프 야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국제적인 프로 축구의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골키퍼는 90분 동안 골포스트 사이에 서서 오는 공을 막아내는 것만이 임무인 것처럼 여겨졌다. 수비수에게 소리를 치며 위치를 지정해준다거나, 크로스 패스를 막기 위해 몸을 날리는 것은 금물이었다. 골키퍼에게 주장을 맡긴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야신이 그 모든 것을 했다. 그뿐 아니라 반격을 위해 공을 빨리 던져주거나, 페널티 지역 밖까지 나와 공격을 차단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고, 골키퍼는 무조건 공을 잡아야 한다고 믿던 당시 펀칭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일도 그가 시작했다. 페널티킥을 151번 막아냈다거나, 소속 팀 디나모 모스크바를 소련축구선수권대회에서 다섯 차례 우승시켰다거나, 세 차례의 월드컵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거나, 1956년 올림픽에서 소련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겼던 것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였을 뿐이다. 그가 골키퍼라는 직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기에, 펠레와 같은 공격수의 대명사나 전설적인 골키퍼 고든 뱅크스까지 앞다투어 그를 칭송하는 것이다. 1994년부터는 월드컵 결승전의 최우수 골키퍼에게 야신 상을 수여한다. 러시아 월드컵 포스터에 보이는 골키퍼는 야신의 모습을 디자인한 것이다. 그런 그를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골을 먹었을 때의 고통이다. “골을 허용한 골키퍼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죽은 것이다.” 고통을 넘어서야 하는 모든 골키퍼들에게 찬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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