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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다시 마르크스를 위하여

등록 2018-05-31 18:20수정 2018-06-01 15:44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는 1960년대 말부터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를 오가며 사상사를 연구해온 학자이다. 단적으로 그는 좌파의 연구자로서 자신의 이념에 투철하게 노동 계급의 역사를 천착한 한평생을 살아왔다. <뉴레프트 리뷰>의 편집위원이었고 <히스토리 워크숍 저널>의 공동 창립자였다는 사실도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특정의 틀에 갇혀 스스로가 만든 껍데기에 안주한 것은 아니었다. 문화사의 방법론이 한창 위세를 떨칠 무렵에는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을 담론적으로 분석한 글들을 엮어 <계급의 언어>라는 책을 펴낼 정도로 새로운 경향에도 개방적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얼마 전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라는 마르크스에 대한 방대한 전기가 나왔다. 마르크스의 개인사를 충실하게 짚어내면서도 그것을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사상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이 저작은 우리가 이 사상가에 대해 갖고 있던 종래 인식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위대함과 환상 사이”라는 부제는 “환상”에 의해 “위대함”이 날조되었다는 의미가 아닌 것임이 확실하다. 거기에는 마르크스를 충실하게 이해할수록 오늘날에도 그를 다시 음미해야 할 만큼 “위대함”이 더욱 두드러지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옮긴이의 서문은 마르크스를 충실히 이해하며 이 책을 읽기 위한 좋은 길잡이이다. 옮긴이는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는 일이 왜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는지 연구사를 정리하며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마르크스 해석의 혼란을 불러일으킨 주범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알튀세였다. 그가 자의적인 해석이 난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그 책의 제목이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는 사실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대한 해독제는 다시 그를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일이다.

천 페이지가 훌쩍 넘는 전기를 조속하게 번역해낸 옮긴이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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