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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짐 크로우의 이상한 경력

등록 2018-04-26 18:11수정 2018-04-26 19:39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가 해방되었다고 흑백 차별이 철폐된 것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합법적인 차별의 길을 열어놓았다. 즉, “분리되지만 평등하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삼아 미국 남부의 여러 주에서는 공공건물은 물론 기차와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서 흑백이 각기 다른 시설을 이용하게 했다. 즉 이 법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 차별이 제도적으로 합리화된 것이다.

이런 법들을 일컬어 “짐 크로우 법”이라 부르는데, 거기에도 차별의 역사가 배어 있으니, 백인 연기자들이 얼굴에 검댕 칠을 하고 흑인을 비하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 주인공의 이름이 짐 크로우였던 것이다.

밴 우드워드는 남부 출신의 역사가였다. 그는 미국 헌법을 경제적으로 해석하며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는 경제적 동기가 역사의 중요한 동인이라고 해석한 찰스 비어드의 노선을 따랐다. 우드워드도 비어드와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성향의 역사가로서 그는 흑백 차별의 근거가 되었던 “짐 크로우 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짐 크로우의 이상한 경력>은 학자로서뿐 아니라 행동가로서 그의 명성을 드높였다.

우드워드의 논지에 따르면 남북전쟁이 끝나고 재건의 시기에 곧바로 ‘짐 크로우 법’이 시행된 것도 아니었고, 불가피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것은 회피될 수 있었지만 대안이 있었음에도 기회를 놓친 채 남부의 백인들이 인종주의를 이용하면서 “합법적으로 처방되고 엄격하게 시행된” 짐 크로우 법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유명한 몽고메리의 시위에서 이 책을 가리켜 “인권 운동의 역사적 성서”라고 치켜세웠다. 그 연설을 듣는 청중 속에 우드워드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진보 계열의 역사가가 말년에 성향이 우익으로 바뀌었다. 다문화주의나 여권 운동처럼 새롭게 출현한 도도한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이유겠지만, 좌파의 비난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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