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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신이 정치를 한다면

등록 2018-04-19 18:17수정 2018-04-19 19:48

자꾸만 인간들이 자신의 정치에 신을 끌어온다. 신은 어떤 정책을 좋아하시고, 신은 누구를 뽑을 거라고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짐 월리스가 <하나님의 정치>에서 쓴 문장을 되풀이해 말하고 싶다. “신은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는 않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인간은 오만하다. 자신이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가장 잘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런 착각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신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신 후에 손을 털며 ‘창조 끝!’이라고 외치기라도 한 것처럼 상상한다. 더 이상의 추가적인 창조는 없음을 암시하며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를 향해 핵폭탄을 쏘다가 인류가 절멸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간이 사라졌으므로 지구도 끝이 나는 것일까. 신은 그만 염증이 나서 다시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을래, 라고 하실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버나드 쇼가 이미 했다. 그는 이렇게 삐죽거린다. “우리가 조물주의 최종적인 피조물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똑같은 신의 창조물인 공룡도, 매머드도 모두 멸종했는데 인간만 멸종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버나드 쇼는 ‘자신의 지식과 능력과 양심 외의 다른 도움은 없이 신의 일을 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정치인을 뽑는 사회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면 인류는 멸종하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에, 토끼 한 마리가 나무 아래에 누워서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하고 공상에 빠져 있는데, 상수리 열매 하나가 떨어진다. 토끼는 그것이 하늘이 무너지는 징조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려 마구 달리기 시작하고, 그런 토끼의 불안한 모습을 보고 다른 동물들도 덩달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 된 숲속을 지켜보던 사자는 하늘이 갑자기 무너지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소문의 진원지를 캔다. 마침내 토끼를 데리고 나무에 찾아가 열매가 떨어지는 것이 하늘이 무너지는 증거가 아님을 밝혀서 모두를 안심시킨다. 고대 불교의 설화집인 <자타카>에 실려 있는 ‘어리석은 토끼와 지혜로운 사자’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사자의 역할을 버나드 쇼가 말한 정치인에 대입한다면 확실히 영문도 모른 채 불안에 떨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멸종당하지 않게 할 정치 시스템이 우리에게 필요하긴 하다.

최근 고양시 시장은 인권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자진 철회했다. 충남도의회 의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충남인권조례’를 폐지했다. 부산의 해운대구의회는 인권조례에 있는 ‘시민의 권리’ 조항을 삭제하고 ‘시민의 협력’이라는 어이없는 조항을 신설했다. 구청이 구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늠할 권리 조항 대신 구민들에게 구청이 하는 일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바꾼 것이다. 이외 계룡, 부여, 아산, 공주, 대구 등 조례 폐지나 제·개정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전국 곳곳에서 활발하다. 이런 활동의 명분은 어디나 똑같다.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조례는 동성애를 조장하고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려에 정부와 의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인권조례가 실제로 동성애와 이슬람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면 된다. 정책이란 상상이나 추측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관계와 장기적 안목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항의 민원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몇 년간 준비한 법을 며칠 사이에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 연구와 조사를 하고 그 결과 보고서를 근거로 판단하면 된다. 그런데 오히려 지역 교계의 목사들과 만나 법에 대해 논의한다. 유언비어와 편견, 혐오 발언이 판단 근거가 된다. 지식이나 양심, 능력을 드러내는 대신 ‘표밭’을 향한 ‘눈치’밖에 남은 게 없는 양 행동한다.

이렇게 선거는 혐오를 키우고, 혐오는 선거를 망치고 있다. 촛불로 세상을 바꾸었다고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혐오 앞에서 흔들리고, 자꾸 종교와 거래를 한다. 지난 2년간 칼럼을 쓰면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가 정교유착이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걸 알지만 포기할 수도 없어 다시 쓴다. 바라는 건 하나다. 동성애에 대해 잘 알든 모르든, 신을 믿는 종교인이든 아니든 이번 선거에서 “나는 혐오의 편에, 차별의 편에 서지는 않겠다”는 말만큼은 확실히 하는 후보를 원한다.

자꾸만 인간들이 자신의 정치에 신을 끌어온다. 신은 어떤 정책을 좋아하시고, 신은 누구를 뽑을 거라고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짐 월리스가 <하나님의 정치>에서 쓴 문장을 되풀이해 말하고 싶다. “신은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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