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헝가리의 한 랍비가 임신한 아내와 다섯 명의 아들을 이끌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중 넷째 아들 에리히 바이스는 어렸을 적부터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근력이 좋아 크로스컨트리 선수였고, 아홉 살 때 이미 외줄타기 공연을 하면서 “공중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러달라고 할 만큼 재능을 과시했다. 결국 그는 전문적인 마술사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름도 해리 후디니로 바꿨다. 전설적인 프랑스의 마술사 우댕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훗날 10년에 걸쳐 미국 마술사 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협회의 위상을 드높였을 뿐 아니라 마술사들의 직업적 기준을 확립했던 그였지만, 처음부터 명성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마술사들의 전통적인 눈속임인 카드 기술을 선보였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에게 전기가 찾아왔다. 채운 수갑에서 벗어나는 묘기를 눈여겨본 매니저가 거기에 주력하라고 조언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미국 최고의 무대에 올랐던 것뿐 아니라 유럽의 순회공연에도 나섰다. 탐정 소설에도 많이 등장하는 런던의 경시청인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관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풀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 사건은 유럽 공연의 장기 계약으로 이어졌다. 수입도 파격적으로 늘었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공연하는 국가마다 경찰에 도전하여 수갑을 채우게 하고는 곧 자유로운 몸이 됨으로써 그에겐 “수갑 푸는 후디니”라는 칭호가 따라다녔다. 물론 경찰은 맨몸의 그에게 열쇠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그 과정을 진행했다. 그는 탈출의 방식도 여러 영역으로 확대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묘기 중에는 발목에 차꼬를 채운 채 물탱크 속에 거꾸로 갇혀 있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 있다. 그때 그 아이들에게 이런 능력이라도 있었더라면… 부질없는 생각에 불과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은 시리기만 하다. 부디 사실만이라도 엄정하게 확인되고 책임의 소재가 분명하게 가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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