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한국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직종이 있다. 공무원·교사·군인이다.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읍사무소의 공무원이 급수와 호봉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원칙이라면 “이 나라를 강고한 사회주의로 끌고 가는 세력”이 공무원·교사·군인이라는 말인가? 정부가 마련한 개헌안 가운데 노동문제와 관련해 큰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은 ‘근로’라는 표현을 ‘노동’으로 바꾸겠다는 것과 ‘노사 대등 결정의 원칙’과 “국가는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33조 3항)는 규정일 것이다. 보수세력과 야당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학자와 법조인들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노동계급은 사회적 특권계급이 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이 나라를 강고한 사회주의로 끌고 갈 것이다” 등의 격앙된 표현으로 비난하고 있다.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 위원장에 임명된 보수야당 정치인은 “개헌안 속에 숨어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적 노동가치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걸고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해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분신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겨우 목숨을 건진 그 노동자는 붕대로 온 얼굴을 칭칭 동여맨 채, 화상으로 퉁퉁 부은 입술로 힘겹게 말했다. “왼쪽에는 정규직, 오른쪽에는 저, 똑같은 작업을 했습니다. 똑같은 작업에, 똑같은 작업지시서에, 똑같은 공구에, 똑같은 작업재료까지… 다 똑같습니다. 오로지 다른 건 정규직 앞에 ‘비’자 하나 붙은 것, 그거 하나 빼놓고는 다 똑같습니다.” 이 비인간적 차별이 해결됐다고 하자. 그다음에 남는 문제는 무엇일까? 현대자동차 한 회사 안에서만 차별이 해소됐을 뿐이다. 현대차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노동자, 그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비인간적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기업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시행돼야 한다. 다시 말해서 “회사가 달라도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같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이 몇만명이나 되는 큰 회사의 노동자나, 직원이 몇명밖에 없는 작은 중소기업 노동자가 자격과 경력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호사를 예로 들면, 몇천명의 간호사가 일하는 대학병원의 간호사나, 간호사가 한두명밖에 없는 동네 의원의 간호사가 자격과 경력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실제로 지켜지는 나라가 현실 속에 있을까? 당연히 있다. 스웨덴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스웨덴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기업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시행했다. 스웨덴 노·사·정이 합의한 ‘연대임금 정책’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보수진영에서는 “스웨덴에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많이 훼손됐다”고 애써 강조하지만 그 훼손된 원칙도 한국 사회에서 볼 때에는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깝다. 잘 들여다보면 한국에도 이미 그러한 국가 단위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직종이 있다. 바로 공무원·교사·군인이다.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읍사무소의 공무원이 급수와 호봉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강남 8학군’ 등으로 불리는 금싸라기 땅에 있는 번듯한 학교의 교사나 시골에 있는 폐교 직전의 작은 분교 교사가 자격과 호봉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육군본부에서 일하는 군인이나 최전방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 군인이 계급과 경력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오히려 벽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별도의 수당을 받아 더 높은 임금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보수야당 정치인들이 “모든 것을 걸고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격렬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들이 혹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평교사와 교감·교장이 같은 임금을 받게 해달라거나, 사병과 장교가 같은 임금을 받게 해달라는 요구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원칙이라면 “이 나라를 강고한 사회주의로 끌고 가는 세력”이 공무원·교사·군인이라는 말인가? 한마디 덧붙이자면,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노동자의 직종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는 전망은 차별을 줄이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더욱 강조해야 할 이유가 될 뿐, 그것을 회피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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