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프라이드하우스에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선수들이 방문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캐나다의 에릭 래드퍼드, 미국의 유명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를 비롯해, 김연아의 코치로도 한국에서는 유명한 브라이언 오서도 다녀갔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캐나다 남자 아이스하키팀의 골리(골키퍼)인 벤 스크리븐스 선수가 지난 2월16일에 강릉에 마련된 ‘프라이드 하우스’를 방문했다. 하키 스틱을 기증하기 위해서다. 그는 하키 스틱에 직접 무지개색으로 테이프를 감았고 여백엔 멋지게 서명까지 했다. 국가 대표 선수가 올림픽 기간 중에 왜 스틱을 기증했을까. 대체 프라이드 하우스가 무엇이기에 방문한 것일까. 왜 하키 스틱을 여섯 가지 색깔의 테이프로 감쌌을까. 이는 2012년에 캐나다에서 시작된 ‘유 캔 플레이’(You Can Play)란 캠페인에서 시작된 것이다. 스포츠 내의 동성애 혐오를 없애고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이었고, 이에 동참하는 아이스하키팀은 스틱을 무지개색 테이프로 감고 시합에 출전해 경기를 보는 팬들에게 스포츠 내 동성애자 차별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와 비슷한 캠페인으로 영국에서 진행된 ‘무지개 신발끈’ 프로젝트도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축구 선수들이 무지개색의 끈으로 신발을 매고 경기를 뛰는 것이다. 이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혐오를 종식시키자는 요청을 축구팬들에게 건네는 셈이 된다. 사회에 만연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스포츠에서 특히 더 강하게 발휘된다. 위에 언급한 캠페인들은 라커룸, 운동장, 관중석 등에 성적 소수자들이 접근하기 힘들다는 현실에 주목했고, 이를 바꾸려면 먼저 프로 선수들이 성적 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즉 무지개색 하키 스틱에는 스포츠가 누구나 즐기는 것이 되길 바라는 평등 추구의 마음이 담겨 있다. ‘프라이드 하우스’는 굳이 번역하자면 ‘자긍심의 공간’ 정도가 된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프라이드 하우스의 시작점이다. 그 당시 캐나다의 성적 소수자 활동가들은 올림픽 기간 동안 성적 소수자들이 환영받으며 편안하게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그 공간을 통해 성적 소수자의 인권과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곧 상상을 실천으로 옮겨 임시 공간을 마련했고 이름을 프라이드 하우스라고 붙였다. 프라이드 하우스는 올림픽 개최국의 성적 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준비한다. 그래서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프라이드 하우스의 운영 방식과 색깔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런던 하계올림픽에선 성황리에 열렸고, 리우 올림픽에서도 소박하게 프라이드 하우스가 열렸지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아예 개최되지 못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러시아 정부가 프라이드 하우스의 운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프라이드 하우스는 밴쿠버에 이어 동계올림픽에서는 두 번째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프라이드 하우스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벤 스크리븐스 선수는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이런 프라이드 하우스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무지개 스틱을 기증했다. 여기엔 스틱을 경매에 부쳐 인권 활동을 돕는 후원금을 마련하라는 깊은 뜻도 담겨 있다. 평창 올림픽 프라이드 하우스에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선수들이 방문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캐나다의 에릭 래드퍼드, 미국의 유명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를 비롯해, 김연아의 코치로도 한국에서는 유명한 브라이언 오서도 다녀갔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같은 성적 소수자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다. 스포츠 정신의 핵심은 평등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선수는 몇 년 전 인스타그램에 “어렸을 때부터 편견 없이 남자들처럼 똑같이 운동하고 싶었어”라는 글을 올렸다. 미국의 스노보드 선수 클로이 킴은 “여자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세계 소녀들에게 보낸다. 편견 어린 시선에 갇히지 않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않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서 운동을 즐길 수 있길 바라는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올림픽을 국가 대항전으로 보고 메달의 색깔이 집중할 때 놓치는 장면들이 많아진다. 선수들의 땀방울을 존중한다면 그들이 견뎌온 성차별과 그들이 꿈꾸는 성평등에도 한 걸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스포츠가 모두의 자긍심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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