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평창올림픽을 무대로 한 감동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다. 생태올림픽, 경제올림픽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구촌의 축제이자 문화올림픽임은 분명하다. 하나 더 보태자면 평화올림픽의 닻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평화올림픽의 완성을 판단할 잣대는 4월 이전 북-미 대화 또는 본격적인 핵 문제 해결 노력의 시작이다. 최근 한반도 정세는 이전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북한이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2000년 1차 정상회담과 2007년 2차 정상회담은 우리 정부가 주도해 이뤄졌다. 북쪽은 막판까지 망설이다가 회담에 응했다. 공동성명도 대부분 우리가 주장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반면 지금은 북쪽이 남북 관계 개선에 다걸기(올인)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이를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동력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 미국의 모습도 과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은 강경 기조를 기본으로 하면서 전략·전술적 고려에서는 취약하다. 정교하게 핵 문제 해법을 만들어 끌고 갈 팀조차 제대로 구성돼 있지 않다. 이와 맞물려 대북 정책 자체가 정치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민에게 보여줄 뭔가가 필요하다. 중국의 발언권이 떨어진 것도 이전과 다르다. 북-중 고위급 교류는 거의 끊겼다. 경제 관계도 크게 줄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슬며시 발을 빼거나 거꾸로 대북 목조르기에 들어갈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북한을 움직일 카드가 빈약하다. 북한 또한 중국을 적대시하지는 않으나 중국에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명줄을 놓친 채 늪에 빠진 듯한 이런 상황은 잠재적인 폭발력을 갖는다. 가장 힘든 나라는 갈수록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북한이다. 그것이 제재 효과다. 북한 이외 나라들 또한 이른 시일 안에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정치·안보·외교 측면에서 짐이 더 무거워진다. 그 모순이 폭발로 나타날 수 있다. 해법의 실마리가 미국과 북한의 진지한 대화에 있음은 분명하다. 그 선택은 쉽게 오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는 정책 전환의 명분과 정치적 성과로 내세울 언덕이 필요하고, 김정은 정권은 체제 안전과 경제 숨통 틔우기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북한은 핵·미사일 시험·발사 중단과 함께 비핵화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미국은 무력시위와 경제제재 등 대북 압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된다. 이런 선택을 끌어낼 나라가 우리 외에 있을까? 대북 특사와 대미 특사를 함께 보내야 할 상황이다. 북쪽에는 우리의 보증을 바탕으로 대미 핵 대화에 나설 것을 설득하고, 미국에는 최대의 관여를 촉구해야 한다. 그렇게 할 역량과 위상, 정당성을 우리는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리나라에 대한 통상 압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대북 제재를 연상시킬 정도다. 여기에는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고려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성과를 내기가 만만찮은 핵 문제보다 대한 통상 압력이 훨씬 끌리는 카드다. 한국 정도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태도도 엿보인다. 통상 압력은 그것에 맞게 당당하게 대처하면 된다. 미국 내 일자리가 중요하다면 우리도 다를 바 없다. 당장 더 집중해야 할 사안은 핵 문제다. 핵 해법에서 실마리를 찾으면 통상 문제에서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중장기적 과제로 미룰 가능성도 커진다. 핵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북한의 힘을 과장해선 해법이 잘 나오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체제 안보다. 북한이 핵을 갖든 그렇지 않든 동북아에서 강대국이 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동아시아 정세를 규정하는 더 근본적인 요인은 미국·일본과 중국의 대립·대결이다. 약소국인 북한은 그 틈새에서 생존을 꾀할 수밖에 없다. 동북아에서 떳떳하고 일관되게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 외엔 없다. 다른 나라들이 이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핵 문제 해법과 꾸준한 동력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아직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했다. 타당한 판단이다. 당장 요구되는 것은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모든 관련국이 늦지 않은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선택의 순간을 맞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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