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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세계 시민 헤세

등록 2018-01-25 18:30수정 2018-01-25 19:16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적으로 독자층이 두꺼운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만큼 한 개인에게 많은 나라의 영향력이 결집되어 있는 경우도 드물다. 아버지의 고향은 당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발트해 연안 독일인들이 거주하던 작은 마을이었다. 따라서 그는 공식적으로 독일과 러시아의 이중국적자였다. 지금은 에스토니아의 영토가 된 그곳에서 독일 남부의 마을 칼프로 이주한 그는 언제나 외로운 외국인이었지만 품위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근무하던 출판사의 사장이 딸을 그와 결혼시켰고, 출판사까지 물려줬다.

아들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에스토니아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다. 그것은 종교적 경건심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명랑한 이야기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동경을 품으며 언젠가 그곳에 꼭 가보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사위에게 출판사를 넘겨줬던 외할아버지는 인도에 파견된 선교사였는데, 언어에 능통하여 인도 공용어의 하나인 말라얄람어의 사전을 냈고, 성서를 그 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프랑스와 스위스계로서 그것이 어렸을 적 헤세의 집안이 바젤로 이주하여 6년을 보냈던 계기였다.

헤세는 고집 많은 아이로 자라났고, 그것이 어머니가 그에게 때로는 낙담을 하면서도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여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썼던 이유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헤세는 작가가 되려는 꿈을 키웠고, 그와 함께 세계 시민이 되려는 의지를 굳건히 지켰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성장 배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 외할아버지로서, 헤르만이라는 이름조차 그에게서 연유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세계 문학으로 가득 찬 자신의 서재를 손자에게 개방한 것이다. 헤세가 회상하듯, 그 독서가 “어떤 종류의 민족주의에도 저항하려는 생각”을 심어준 것이다. 나치를 피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토마스 만의 망명을 도운 이유가 바로 그 세계 시민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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