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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비트코인 광풍과 88만원 세대

등록 2018-01-23 18:28수정 2018-01-23 19:03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온라인 게임을 통한 ‘현질’(현금을 주고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사고파는 행위)에 익숙한 이들에게 코인 열풍은 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현상이다. 이들의 꿈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집과 연애와 결혼이다. 부모가 했던 것처럼 ‘투자’를 제대로 해서 마지막 꿈을 이루어볼 참이라고 한다.

작년 여름 우연히 비트코인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트코인―암호화폐에 베팅하라>(Banking on Bitcoin)를 보며 시대 공부를 했다. 다큐 첫머리에 “화폐제도는 한마디로 회계시스템”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어서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개인간(P2P) 방식의 ‘정직한’ 회계시스템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 기술로 새 화폐시스템을 만들어가 보자며 좌충우돌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다큐를 보면서 불안한 미래 실험에 참여하는 다양한 청년들의 열정적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특히 이들이 2008년 월가 파동이 터진 직후, 그러니까 국가와 중앙은행 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난 시점에 활동을 본격화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6개월이 지나 한국에서 나는 김치 프리미엄 등의 단어와 함께 비트코인 투기/투자로 난리가 난 동네를 만난다. 또 비트코인 중심에는 2030세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인세대’의 외침, “가상화폐 하니까 청춘이다”>라는 기사는 당사자 인터뷰를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있었다.(<머니S> 2018년 1월19일, 강영신 기자) 29살 회사원은 이 열풍은 한탕주의, 도박 등이 만연해 있고 집값, 결혼 비용, 육아 비용 등의 부담을 사회가 줄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27살 취업준비생은 부동산 신화처럼 ‘사두면 무조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믿음 아래 퍼지고 있다면서 자산이 없는 세대가 단돈 몇만원을 투자해 수십, 수백 배까지 돈을 불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매달 넣는 적금 이자에 비해 ‘한방에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눈이 뒤집혔다’거나, 34살 자영업자는 ‘부모세대가 부동산·주식에 열광했듯 비트코인에 열광한다’는 표현을 썼다.

생각해보면 이 세대는 청소년기에 국제통화기금(IMF) 충격을 경험하였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성장한 ‘아이엠에프/신자유주의 세대’이다. 민주화와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자유와 세계를 향해 배낭여행을 떠난 ‘서태지’ 세대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2007년 우석훈과 박권일은 대학 졸업 후에도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할 이들 세대의 운명을 경제적으로 분석해내면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찌감치 다른 삶을 기획하라는 조언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좀 다른 삶의 기획을 하기보다 부모의 지원과 보호를 택했다. 부모의 조언을 따라 배낭여행 대신 어학연수를 다녔고, 뚜렷한 보상이 주어질 일만 열심히 하였고,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을 통한 ‘현질’(현금을 주고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사고파는 행위)에 익숙한 이들에게 코인 열풍은 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현상이다. 이들의 꿈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집과 연애와 결혼이다. 부모가 했던 것처럼 ‘투자’를 제대로 해서 마지막 꿈을 이루어볼 참이라고 한다.

우석훈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암호화폐 투자 광풍은 “젊은 세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실패”라고 말했다. 그런데 상황을 낫게 하려면 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라며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벌겠다는 이들이 가장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은 간섭이 아닌가? 사회학자 김홍중은 이들을 각자도생에 익숙한 ‘생존주의 세대’라고 불렀다. 나의 절친 청년 연구자는 이들이 즐겨 하는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예로 들면서 제발 섣부른 제안은 말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정부당국에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하나는 입시/소비/투기(자원 없는 이들의 투자는 투기가 될 수밖에 없다)의 사이클을 끊으라는 것이고, 하나는 청년 지원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재미난 일거리를 찾고 세상을 구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을 바꾸는 것, 그리고 청년들에게 몸에 맞지 않는 직장을 찾으라고 하지 말고 자율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투자/투기를 하든 창업이나 사회적 기업을 하든 오로지 각자도생하려는 그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입시교육에 찌든 청년들은 좌충우돌할 것이고, 언제 호출할지 모르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도 하겠지만, 서서히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재테크’가 아닌 제대로 된 ‘삶의 기획’을 시작할 것이다. 결국 스스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아닌가? 비트코인 열풍 담론이 자연스럽게 교육개혁과 기본소득 논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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