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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왕보다 강한 여왕

등록 2018-01-18 18:14수정 2018-01-18 20:27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해 오늘날 에스파냐 영토의 기반을 닦아놓았다는 것은 세계사의 상식이다. 그 부부가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여 1974년 교황으로부터 “신의 하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신의 하인”은 성인으로 시복받기 위한 최초의 단계다.

그런데 세계사 책에서는 남편보다 아내의 업적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결혼부터 이사벨의 원려에 의해 꾸며지고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근세 초 유럽의 왕가가 대개 그렇듯 정략결혼이나 전쟁을 통한 합병과 같은 과정으로 계보는 혼란스러웠다. 이복 오빠였던 국왕 엔리케 4세는 동생을 포르투갈의 왕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러나 지중해의 영유권을 가졌던 아라곤의 왕이 자신에게 제격이라 생각한 이사벨은 페르난도를 몰래 만났고, 엔리케의 사망 이후 마침내 결혼했던 것이다.

페르난도가 왕위를 계승한 뒤 태어난 에스파냐 왕국은 실질적으로 두 군주의 공동통치를 받았다. 그들은 부정부패를 축출하는 개혁을 벌여 국가의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문제에서도 페르난도는 타락한 공직자들에게 관용을 베풀려 했지만 이사벨은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도 이사벨이었다. 그 덕분에 해외 식민지를 확보하게 된 에스파냐는 강국으로 떠올랐고, 이후 해외 식민지 개척이 한 시대를 가리키는 세계사의 용어로 정착했다.

하지만 그들이 경쟁만 벌인 것은 아니었다.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잔존하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려던 레콩키스타에는 남편이 더 열성이었다. 이사벨은 전장을 누비는 남편을 위해 군자금과 군수품을 조달했다. 또한 그들의 공동적인 관심사는 신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민원인들의 불평을 직접 들었다. 내게는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업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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