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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끝의 시작’ 초기 국면, 누가 완성하나

등록 2018-01-10 15:57수정 2018-01-10 19:14

김지석
대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이 무난하게 진행됐다. 설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지 못하고 남쪽의 비핵화 언급을 둘러싼 신경전이 있었으나 남북 관계 복원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까지 이어질 여러 접촉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새 문을 열기를 기대한다.

북한은 정책 방향을 한번 결정하면 잘 바꾸지 않고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번 회담에서 상당히 활발한 태도를 보인 것은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방향을 분명히 설정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명분·실리의 확보와 국제적인 고립 탈피라는 목표가 있다. 북쪽이 평창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기자 외에 고위급 대표단과 예술단·참관단·태권도시범단까지 보내겠다고 한 것은 이 목표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내놓을 카드가 많지 않은 북한이기에 이산가족 상봉에는 늘 소극적이다.

지구촌 차원에서 남북 관계는 핵 문제보다 위상이 낮다. 핵·경제 병진을 최상위 정책으로 삼는 북한에도 그렇다. 크게 봐서 우리도 다를 바 없지만, 우리는 남북 관계 개선과 핵 문제 해결 노력을 통합해서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 세대 동안 진행된 핵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를 거치면서 최종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에 이은 ‘핵무력 완성 선언’이 있었다. 국제사회는 잇따른 대북 제재 결정으로 대응했다. 특히 제재에 대한 중국 태도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마지못해 움직이는 모습이었으나 이제 ‘일정한 한도 안에서 엄격한’ 쪽으로 옮겨갔다. 중국도 사태의 엄중함을 잘 안다.

최종 단계에서 관련국들의 선택 폭은 넓지 않다. 크게 셋 가운데 하나다. 상황 관리마저 잘하지 못하는 가운데 갈등이 심화하는 경우(지난 1년 동안 걸어온 길이다), 국지적인 무력충돌을 비롯해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 아니면 현실에 대한 자각을 출발점으로 삼아 대화에 나서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그 경로는 다시 둘로 나뉜다. 우선 서로 전제가 너무 달라 핵 문제를 의제에 올리지 못하거나 의제로 삼아 논의해도 실질적 진전이 어렵다면 다시 앞의 두 경우로 돌아간다. 그와 달리 잘 짜인 틀에 따라 협상이 차근차근 진행될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면 새 국면으로 넘어간다. 남북 관계 진전과 핵 문제 해결 노력이 선순환 구조를 갖추는 것은 이 시나리오에서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9·19 공동성명 등 핵 문제와 관련한 진전은 모두 남북 사이 소통이 활발할 때 이뤄졌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반도·동북아의 평화와 분단 극복을 지향하며 일관된 정책을 펼 수 있는 나라가 우리밖에 없다. 미·일·중·러 등 관련국들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정학적 경쟁이나 국내 정치를 우선해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때가 적잖다. 북한 또한 교조적인데다 관련국들과의 접촉 통로도 적어 과잉 공포 또는 과대망상에 빠지기가 쉽다.

한반도 관련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깊이 소통할 수 있는 나라 또한 우리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엔 동북아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우리가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인식을 관련국이 공유해야 한다. 북한 또한 대남 전술 차원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음을 인정하고 남북 대화에 임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가 단기간에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지난 몇 해 동안 해온 것처럼 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거나 북한 체제의 붕괴를 바라며 제재와 압박에만 기대서는 사태가 더 나빠진다는 점도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 관계가 개선될 수 있고 남북 관계가 개선돼야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여건이 갖춰지고 전망이 선다면 남북 정상회담도 하겠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남북 사이 신뢰성을 높이고 관련국과의 소통을 극대화하지 않는다면 빈말에 그치기가 쉽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최대의 압박과 최대의 관여’라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제 최대의 관여가 무엇인지 보여줄 때다. ‘끝의 시작’ 초기 국면은 북한이 핵 문제를 의제로 받아들이고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완성된다. 의지와 창의성, 조정력과 인내심이 모두 필요한 상황이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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