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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행진곡의 왕

등록 2018-01-04 17:41수정 2018-01-04 18:45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해병 군악대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던 아버지는 음악에 소질을 보이는 열세 살짜리 아들이 서커스에만 한눈을 팔고 있는 꼴이 보기 싫었다. 그는 어린 아들을 해병대에 입대시킨 뒤 군악대로 차출했다. 이것이 미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특히 “행진곡의 왕”이라는 칭호로 불릴 만큼 그 분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존 필립 수서가 군대에 가게 된 내력이다. 군대 관련 공식 기록에 그의 최초 계급은 “소년”으로 되어 있다.

어렸을 적부터 관악기는 물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포함한 다양한 악기에다가 성악까지 재능을 보인 그는 군악대에서 곧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해병대의 군악단장에 올라 다섯 명의 대통령 아래 10여년 동안 군악대를 지휘했다. 그가 지휘하던 군악대는 대통령 두 명의 취임 축하 무도회에서도 연주했다.

보통 그가 발명한 악기에 그의 이름(다른 발음은 ‘수자’)이 붙어 수자폰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쯤만 사실이다. 그는 튜바를 개량하여 음역을 바꿈과 동시에 연주자가 서서 행진할 때 더 편하도록 만들기를 원했다. 그것을 위해 필라델피아의 악기 제조업자 존 페퍼에게 의뢰했던 것인데, 거기에 수서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악기의 제조 과정에 수서의 조언과 제안이 많이 반영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는 제대 이후 수서 밴드를 만들었다. 미국은 물론 세계를 순회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 1만5천회 이상의 공연 중에서 특히 기억할 만한 것은 파리의 세계박람회와 런던 로열 앨버트 홀의 무대였다. 파리의 도로를 누비며 개선문까지 행진했던 공연도 잊을 수 없는 행사였다. 특이하게도 수서 밴드가 행진을 하면서 악기를 울린 것은 40년 동안 여덟 차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자 수서는 다시 입대하여 군악단장이 되었다. 이미 부를 쌓아올린 그는 1달러만을 뺀 월급 전액을 해병대 구조 기금에 기부했다. 새해 모두에 그의 행진곡에 즐거워하고 싶은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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