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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내희 칼럼] 신세계그룹의 노동시간 단축 방침

등록 2017-12-10 17:37수정 2017-12-10 18:55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노동시간 단축은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지출 비중이 4.23%로 세계 최고다. 하지만 아직도 노동시간이 오이시디 최장에 가깝다는 사실은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노동을 너무 많이 하게 만드는 사회임을 말해준다.

지난 주말 <한겨레> 1면에 눈길을 확 사로잡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즉슨 재계 10위 신세계그룹이 임금삭감 없이 ‘주 35시간 노동’을 시행한다는 것. 35시간이라면 법정 시간보다 5시간이나 적다. 한 취업포털의 조사대로 직장인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3시간에 이르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신세계의 이번 방침은 중대한 의미가 있으며 파장이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나라 가운데 한국은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오이시디의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35개 회원국 평균인 1764시간보다 305시간이 더 많은 2069시간이었다. 2069시간도 너무 많은 것이지만, 이마저도 과소 보고되었다고 한다. 한국인의 실제 연평균 노동시간은 오이시디 평균보다 477시간이 더 많은 2241시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하루 8시간으로 계산하면 우리는 오이시디 평균보다는 60일,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363시간)보다는 878시간 즉 110일이나 더 오래 노동을 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기업이 주간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확 줄이겠다고, 그것도 임금삭감 없이 그러겠다고 나선 것은 한국의 노동현실에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일단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싶다.

노동은 흔히 자연세계를 뜻에 맞게 조형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인식된다. 이런 생각을 가장 강력하게 제출한 사람은 철학자 헤겔로서, 그는 노동을 인간 행위자가 자신의 필요나 욕망을 표현하는 행위로 봤다. 말하자면 노동을 예찬한 셈이다. 하지만 노동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산물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원시적 축적’ 과정에서 생산수단을 빼앗긴 사람들이 시장에서 노동력으로 팔려 생산과정에 투입된 결과 오늘날의 노동이 생겨났다. 노동, 적어도 자본주의적 노동은 그렇다면 인간의 고유한 자기표현 방식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투입된 개인들이 강제로 해야 하는 활동, 그러나 역사적으로 특수하기 때문에 극복될 수 있고 극복되어야 하는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간 문명이 지속되는 한 노동을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크게 단축할 수는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할 가능성은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커진다. 최근에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를 함께 자아내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도 노동시간 단축을 획기적으로 가져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술발전이 노동시간을 자동으로 단축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자본이 축적되어야 하고, 이 축적은 가치 생산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데, 가치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는 인간이 만들어낸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속되는 한 사람들을 가치 생산의 수단으로 만드는 경향은 그래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노동시간의 단축이 기술문명의 발전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노동과 기술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하느냐가 문제라 하겠다.

신세계그룹이 임금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은 반갑지만, 자본이 그런 결정을 하도록 우리 사회가 강제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눔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이런 요구를 반영해 지난 대선에서는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주 35시간 노동’을 공약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아울러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구호가 커진 것도 기업으로 하여금 노동시간 단축을 고려하도록 한 큰 이유일 것이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노동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시간이 크게 단축될 필요가 있다.

노동을 하지 않고 다른 형태의 인간 활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당장은 어렵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지출 비중이 4.23%로 세계 최고다. 하지만 아직도 노동시간이 오이시디 최장에 가깝다는 사실은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노동을 너무 많이 하게 만드는 사회임을 말해준다. 생산성은 높이되 일자리는 나눠 갖도록 노동을 새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과 자본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신세계그룹의 이번 결정이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일자리 나눔을 실현할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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