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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장사꾼’ 트럼프와 핵 해법

등록 2017-11-08 17:26수정 2017-11-08 19:41

김지석
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좌충우돌 행보를 하더라도 일관되게 관철하려는 게 있다. 극도의 단기적인 성과, 무엇보다 경제적 이익이 그것이다. 이를 그의 ‘장사꾼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은 그가 내세운 미국우선주의의 속심이자, 온갖 추문 속에서도 그를 지탱해주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트럼프의 장사꾼 본성은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보더라도 트럼프는 한국에서 세 가지 성과를 거뒀다. 수십억달러의 무기 수출, 한국의 ‘합리적’인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 ‘자유롭고 공정하고 균형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이 그것이다. 미국이 문재인 정부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거의 전부다. 트럼프가 그 대가로 내놓은 것은 공세적인 대북 발언 자제와 한-미 동맹의 지속성 확인뿐이다. 오랜 동맹국이라면 당연한 내용을 선심 쓰듯 언급하고 실익을 챙긴 것이다.

첫 방문지인 일본에서도 정도 차이가 있지만 양상은 비슷했다. 트럼프는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 무기를 사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고 공개 압박했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재고품을 강매하는 재벌기업과 같은 행태다. 아베가 회담 성과로 꼽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공동전략에 대해서도 미국은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트럼프는 “자유롭고 공평한 무역을 위해 무역적자를 낮춰야 한다”고 했고, 백악관 쪽 설명에도 이 지역을 겨냥한 미-일 경제협력만 나열돼 있다.

트럼프는 9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중국에서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중국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였다. 무역적자 축소 등 경제 현안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타협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 핵 등 지역 문제에서 협력하는 시나리오가 예상되기도 했다. 실제로는 거꾸로다. 트럼프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그 동력을 경제 압박에까지 확장하려 한다.

어떤 나라든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가 외교·안보 사안, 특히 북한 관련 문제를 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점이다. 그는 8일 국회 연설에서 북한의 온갖 악행을 꼽으며 “이제는 힘의 시대”라고 했다. 한반도 주변에 배치한 미국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언급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대결과 군비 확장을 당연시하며 우리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는 북한이 지난 8월과 9월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을 쏜 것과 관련해서도 “왜 쏘아 떨어뜨리지 않았느냐”며 일본 쪽에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북한 미사일은 일본 상공 550㎞를 통과해 ‘영공 수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데다 무리하게 요격을 시도할 경우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일본은 이를 요격할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 결국 한반도 정세와 핵 문제가 어떻게 되든 미국 무기를 사서 사용하라는 얘기다.

트럼프는 이전 정권들의 실패를 거론하며 ‘내가 핵 문제를 푼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이번 순방에서도 대북 제재·압박 강화 일변도에서 나아간 게 없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지만, 결국 중국이 앞장서야 한다는 중국책임론을 넘어서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트럼프의 강조도 여전하다. 그는 이런 접근이 대중국 압박이 되고 한·일에 대한 무기 판매를 쉽게 하므로 일거양득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핵 문제가 더 악화하고 동북아 냉전 구도도 짙어질 뿐이다. 체제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북한에 더해 중국마저 한·미·일이 자신을 포위한다는 위기의식을 갖는다면 평화적 핵 문제 해결의 전제인 대화와 협력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이번에 “지금은 대북 제재와 압박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다. 트럼프 방식을 그대로 좇는다면 사태는 더 나빠지고 안보 비용은 엄청나게 커진다.

이번 정상회담의 작은 성과라면 트럼프가 대북 대화와 관련해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 지켜보겠다”고 한 것 정도다. 대화에 힘이 실린 언급은 아니지만 이전의 대화무용론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실마리를 끌어내 협상 틀을 짜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 포기에 관심이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력부터 우리 정부 안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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