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는 중학생 시절부터 공산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서도, 녹색당에서도 10대 중·고등학생들이 청년조직에 가입해 활발히 활동한다. 일찍부터 정치 훈련을 받은 수많은 열성 당원들이 있기에 30대에 벌써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춘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얼마 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서른한살(1986년생)의 제바스티안 쿠르츠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국민당이 바람을 일으켰다. 선거 승리 뒤에 국민당은 극우파 자유당을 연립정부 파트너로 선택해 유럽 정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30대 초반 총리의 등장은 ‘정치’라고 하면 늘 늙수그레한 남자들만 연상하는 이 땅의 시민들에게는 참으로 신선한 소식이었다. 오스트리아만이 아니다. 대서양 이쪽저쪽에서 모두 지도자군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올해 프랑스 대선에서 화제의 중심이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1977년생이다. 겉보기에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한 연배일 것 같은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1971년생으로 장년에 가깝다. 그러나 이 정도 나이조차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보기 드문 ‘젊은’ 축에 속한다. 유럽에서는 이런 광경이 익숙해진 지 꽤 됐다. 2015년 그리스에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부가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보다 왼쪽의 정치세력이 선거로 집권했다는 사실에만 놀란 게 아니었다. 1974년생인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당시 41세였다. 이후 특히 유럽 좌파정당들을 중심으로 30~40대 지도자들이 급부상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를 창당 2년 만에 집권을 넘보는 정당으로 성장시킨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사무총장은 마흔이 채 되지 않은 1978년생이다. 지난 주말, 1년 만에 다시 실시된 아이슬란드 총선에서 의석을 늘리며 제2당이 돼 좌파연립정부를 결성할 가능성이 높은 좌파녹색운동의 대표는 1976년생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다. 올해 네덜란드 총선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을 누르고 좌파 제1당으로 떠오른 녹색좌파의 대표 예서 클라버르는 그보다 10년 더 젊은 1986년생이다. 국회의원 명단에서 1970년대생은 고사하고 1960년대 후반 태생도 찾기 쉽지 않은 한국 상황에서는 너무 낯선 풍경이다. 앞으로 고령화가 문제라는데, 한국 정치는 이미 초고령화에 도달했다고 할까. 그래서 요즘은 다른 나라 선거 결과를 보도할 때마다 늘 저들에 견줘 조로해버린 우리 정치를 푸념하는 기사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런 푸념 이전에 제대로 봐야 할 것은 젊으면서도 유능한 정치가가 나올 수 있는 저들의 풍토다. 30대 당대표가 배출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젊은 열성 당원들이 두텁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30대가 풋내기 취급받지 않고 놀라운 정치력을 펼쳐 보이는 것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치 수련 기간이 다들 10년, 20년은 족히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가? 10대 청소년 때부터 정치에 적극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는 중학생 시절부터 공산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했다. 스페인 포데모스의 이글레시아스 사무총장도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14살 나이에 공산당 청년조직에 가입했다. 두 사람이 별난 게 아니고, 공산당만의 문화도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서도, 녹색당에서도 10대 중·고등학생들이 각 당 청년조직에 가입해 활발히 활동한다. 이렇게 일찍부터 정치 훈련을 받은 수많은 열성 당원들이 있기에 30대에 벌써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춘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촛불 이후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치 개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지율만큼 정당에 의석을 배정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중요하다. 한데 그만큼 중요한 또 다른 정치 개혁 의제가 있다. 바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이다. 기왕에 논의되던 선거 연령 18세 인하를 하루빨리 실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청소년의 삶과 직결된 교육, 노동 등의 영역에서 당사자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통로를 늘려야 한다. 또한 다른 민주 국가들처럼 10대도 정당에 자유롭게 입당해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지 나라 밖 젊은 정치인 바람이 부러워서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헌법 정신의 원류로 3·1운동과 4·19혁명을 언급한다. 모두 당시 10대가 주역이었던 사건이다. 굳이 외국 사례를 논할 것 없이 청소년 정치 참여는 한국 민주주의의 자랑스러운 전통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 전통을 되살리고 다시 꽃피울 때다. 우리를 제치고 벌써 저만큼 앞서간 21세기의 시간에 끝내 뒤처지지 않을 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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