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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언론자유’를 지키겠다고?

등록 2017-09-06 18:32수정 2020-04-28 15:45

김이택

“저를 아시는 분들 아시죠? 저 이렇게 게시판에 글 쓰고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그냥 다 좋은 게 좋고 어지간한 일은 다 이해하는 세상 철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부끄러운 게 아니라 쪽팔려서 뉴스 진행하는 내내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현직 대통령 탄핵 뒤 주말 <뉴스데스크>를 화면 밖에서 진행했던 <문화방송>(MBC) 윤효정 기자는 사내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탄핵 당일 ‘뉴스데스크’는 “누적참가자 1500만명 19번에 걸쳐 펄럭였던 태극기의 물결은 대통령 퇴진을 막지 못했지만 보수권 집회의 새로운 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보수세력 결집 태극기집회 새바람’)라고 했다. 박영수 특검 집 앞에서 야구방망이 흔들고,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 집 앞에서 탄핵 기각을 ‘협박’하며, 결국 3명의 사망자까지 낸 태극기집회를 이렇게 칭찬했다.

윤 기자처럼 ‘쪽팔려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기자·피디·아나운서와 노조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을 택했다. 한국방송(KBS) 노조의 파업도 동기는 마찬가지다. 문화방송·한국방송 종사자들의 목표는 최소한 쪽팔리지 않을 정도라도 방송할 수 있게 ‘공정 방송’을 되찾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언론 자유와 방송 독립을 지키자는데, 진보-보수나 좌-우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애초부터 난센스다.

문화방송 경영진은 노조 파업이 시작되자 ‘정권의 방송 장악’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헌법 21조(‘언론 자유’ 보장)를 위반했다고 따졌다. 김장겸 사장이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 조사에 3차례나 불응해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언론 탄압’이라며 ‘방송 독립’을 지키겠다고 했다.

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 까이며 ‘좌파 척결’을 다짐한 김재철 이래 김장겸까지 사장들은 ‘언론 자유’와 ‘공정 방송’을 위해 싸우던 기자·피디·아나운서들만 골라서 마이크를 빼앗았다. 노조 집계 피해자만 218명이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자유·독립 운운하니 신천교육대 요리강습, 신사업개발센터의 스케이트장 관리, 경인지사에서 광고협찬 따오게 한 것도 자유·독립 투사로 키우겠다는 깊은 뜻이 있었다는 얘긴가. 웃픈 블랙코미디다.

MBC 김장겸 사장
MBC 김장겸 사장
문화방송 경영진 행태는 여전히 주말뉴스 때처럼 ‘태극기 새바람’ 코드 그대로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며 “애국시민은 문화방송 편”이라 확신한다는 이사장, 야당 정치인들에게 ‘도와드릴 일 없냐’고 문자 보내며 정치판 기웃거리는 사장, ‘이유 없이 잘랐다’고 말해 놓고는 따지는 당사자에게 “방송의 미래를 망치지 말라”는 4차원 답변으로 실소를 유발하는 부사장까지. 대한민국 1% 안에 드는 비정상이 아니면 아수라의 엠비시 경영진 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들의 우군으로 나선 자유한국당이 ‘언론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도 낯설다. 군사독재에 뿌리를 둔 이 당은 애초부터 ‘언론 자유’ ‘민주’ 같은 용어랑 친하지 않다. 언론은 통제나 관리 대상이었다. 그들 쪽에 빌붙은 언론만 특혜 누리고 급성장했다. 시민을 살육한 군사반란 수괴를 ‘탁월한 영도력’으로 미화하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한 대가였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불타던 광주엠비시는 독재에 부역한 어용 방송의 말로를 상징한다. 그 뒤 시민들이 쟁취한 민주주의로 시대가 바뀌자 권언유착으로 단물 빨던 자들이 슬그머니 ‘민주’ 대열에 무임승차해 언론 자유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거센 ‘공정 방송’ 요구로 벼랑에 선 김장겸이 내민 손을 홍준표가 덜컥 잡았다. 입만 열면 “안보, 안보” 하더니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도 국회는 팽개치고 방통위·검찰청에 이어 청와대 앞 장외투쟁에 나섰다. 이들이 외치는 ‘언론 자유’ ‘자유민주주의’는 안드로메다에서 보내온 메시지만큼이나 난해하다. 동료를 내쫓고 정권에 ‘셀프 장악’ 당한 대가로 사장·본부장·지방사 사장 등 꽃보직을 꿰차며 최승호 피디 말처럼 ‘잘들 살았던’ 자들이 이제 와서 ‘방송 장악 저지’ 운운하는 건 정말 역겹다.

김 사장이 부장들의 노조 탈퇴를 강요한 사실은 여럿이 서부지청에 증언했다고 한다. 보도국장 때 노조활동 방해하려 부당전보하고 블랙리스트까지 있었던 건 가장 악질적인 부당노동행위로 노조법 81조 위반이다. 더이상 방송을 망치지 않도록 격리가 필요해 보인다.

4일 한 누리꾼(gama****)은 네이버 카페에 글을 올리며 이런 제목을 달았다. ‘언론장악 운운하는 거 보니 웃기네요’. 정말로 웃기는 일이다.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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