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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북한의 도발과 ‘조건 없는 대화’

등록 2017-08-30 17:30수정 2017-08-31 15:32

북한이 29일 태평양으로 발사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은 일본 상공을 넘어간데다 괌 미군기지까지 갈 잠재력이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지난 26일엔 단거리 발사체 세 발이 동해 쪽으로 발사됐다. 북한 관영 언론은 이런 ‘훈련’이 “(31일 끝나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합동군사연습에 대비한 대응 무력시위의 하나로 진행”됐으며 “중장거리탄도로켓의 실전운영 능력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이맘때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김정은 정권의 모험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면서도 다음 단계에 대한 복선을 깔고 있다. 다음 단계란 더 수위가 높은 도발 또는 대화다. 상황에 따라 대화에 나설 수 있지만, 대결 분위기가 계속되면 무리를 해서라도 벼랑끝 전술을 이어가겠다는 얘기다. 북한이 새 도발을 한 이상 일정 시간 정세가 경색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강 대 강 대결’로는 북한 체제의 붕괴를 막연하게 기다릴 수 있을 뿐 핵 문제는 더 나빠지기 쉽다. 북한의 도발이 거칠기는 하지만 맥락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대화는 ‘원칙 없는 유화’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최근 들어 평화적 핵 해법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분명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부 장관은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쏜 직후에도 “북한과 대화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와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얼마 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공동기고문에서 “핵실험, 미사일 발사나 또 다른 무기 시험, 도발적인 위협 등의 즉각적 중단”을 대화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는 이 조건에 어긋난다.

하지만 조건을 엄격히 따져 대화를 피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사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내보이는 것을 경시해선 안 되지만, 허세와 과장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상황이 왜곡될 수 있다. 대화는 우선 실체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건 없는 대화는 북한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도 유용하다. 김정은 정권은 경제적 보상을 대가로 한 핵 협상 가능성을 일축하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폐, 북-미 평화협정 등 ‘안보 대 안보’ 협상을 강조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분석처럼 “비핵화 협상의 구도가 ‘안보 대 경제’에서 ‘안보 대 안보’ 구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깔린 북한 생각이 뭔지 분명해져야 대북 접근의 큰 틀이 제대로 잡힐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마땅하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어떤 내용이든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핵 문제 해법은 나올 수가 없다.

중국의 협력은 대북 대화 못잖게 중요하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중국책임론에 기댄다. 핵 문제 해결의 무거운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려는 심리다. 북한이 바라는 안보를 중국이 제공하지 못하는 한 이는 그릇된 노선이지만,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궁극적인 핵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은 미-중 패권 경쟁 구도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최근 미국에서 미-중 전략적 타협론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교 25돌을 맞은 한-중 관계는 지금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문제로 최악의 상황에 있다. 두 나라 관계는 그동안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여기에는 안보 문제에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렸었다. 중국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이 이 전제를 깼으며 자신의 ‘핵심이익’을 침해했다고 여긴다. 이제 우리는 사드 배치가 중국의 거센 반발을 무릅쓸 만한 우리의 더 큰 핵심이익임을 나라 안팎에 공언하거나, 사드 배치와 대중국 대결이 무관함을 중국 쪽에 명확하게 납득시켜야 한다. 둘 다 할 수 없다면 이제라도 사드 배치를 철회하는 게 옳다.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다. 당연하고 좋은 얘기다. 이 정책이 성립하려면 북한과 미국·중국이 모두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북-미 대화와 한-중 협력 강화, 남북 관계 개선이 함께 가는 길이 그것이다. 고위급 한-미-중 대화 틀이 작동한다면 그 과정이 더 원활할 것이다.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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