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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핵 해법 이끌 ‘전략가’가 없다

등록 2017-08-09 17:25수정 2017-08-09 21:19

김지석
대기자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례 없는 말 폭탄 공방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예방전쟁’(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언급하고 북한은 ‘괌 미군기지 포위사격’으로 맞받는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지만 기 싸움이 심해지는 것 자체가 상황 변화를 반영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수 있도록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다’(국방정보국)는 미국 쪽 분석은 심상치 않다. 며칠 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맞서 어느 때보다 강한 내용의 대북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터다.

그렇다고 북한 핵 문제의 본질이 달라진 건 아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 배치는 이르면 내년쯤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동북아 안보 상황을 근원적으로 바꿀 ‘게임 체인저’라고 하는 것은 방향착오다. 북한 핵·미사일이 국제적인 위협임은 분명하지만, 동북아의 역학구조로 볼 때 북한이 체제 생존 이상의 목표를 추구하긴 어렵다. 긴장이 일정한 수위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실효성 있는 핵 해법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핵 문제를 풀려면 관련국들의 몇 가지 준비가 전제돼야 한다. 우선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공유다. 이 대목에선 이전보다 진전된 모습이 보인다. 특히 핵 문제는 이제 트럼프 정부 대외정책 전체의 성패를 가름할 현안이 되고 있다.

다음은 관련국들의 공조다. 그 가운데 필수는 한-미-중 협력이다. 핵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끝까지 책임 있게 논의하고 실천할 나라는 이들뿐이기 때문이다. 과거 9·19 공동성명도 세 나라의 입장이 잘 조율됐기에 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효과적인 방법론 마련과 지속적인 동력 확보다. 미국이 말하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든,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평화적·외교적 해결’이든, 경로가 잘 보이지 않고 동력이 부족하면 공염불에 그친다.

관련국 공조는 충분하지 않다. 핵 문제 해결 노력의 책임 소재와 해법을 둘러싼 미-중 이견은 여전히 크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이 두 나라가 전략적 타협보다 대결 쪽으로 가는 듯한 모습도 바뀌지 않고 있다.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굴복시킨다는 미국 강경파의 발상은 미-중 대결을 부각해 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방법론과 동력 또한 미흡하다. 대북 압박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북한이 생각보다 빠르게 핵·미사일 역량을 키워나가는 속도와도 걸맞지 않다.

최근 상황은 새 노력의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다. 중국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대북 제재 강화에 동의한 것은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시각이 유연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체제 생존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중국의 협력을 더 많이 끌어낼 여지가 있다.

당장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타협 쪽으로 접근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제재안 채택을 앞두고 미국은 대중국 통상 압력을 카드로 썼다. 이런 접근은 갈등을 키운다. 핵 문제도 전반적인 미-중 협력의 연장선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공동의 접근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북한 정권 교체, 북한 붕괴, 한반도 통일 가속화, 38선 이북 미군 파견 등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4노’ 노선을 재확인했다. 이런 입장은 평화적 해법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지금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이제까지 실패한 방식에 머물지, 아니면 새롭게 출발할지 분기점에 있다. 새 동력과 접근 방안, 관련국 사이 협력, 대북 대화 통로 구축 등에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작지 않다. 하지만 대북·대미·대중 견인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갑작스러운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 결정이 그 가운데 하나다. 무엇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적절하게 역량을 배치하며 동력원 구실을 할 전략가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 등이 엇갈리는 얘기를 하는 상황이어서 전략가의 필요성은 더 크다. 물이 다소 부족해도 배가 뜨게 만들어 목표를 향해 순항하도록 하는 게 성공적인 외교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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