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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인간 기관차

등록 2017-08-03 18:15수정 2017-08-03 20:46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한 소년에게 운동 코치가 달리기 경기에 나가보라고 했다. 허약해서 못 한다고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종용에 결국 참가하여 100명 중 2등을 했다. 승부욕이 강했던 그 소년은 달리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해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육상 영웅 에밀 자토페크가 선수가 된 계기였다.

국내에서 장거리 경주를 휩쓸던 그는 1948년 런던 올림픽의 일만 미터에서 금메달을, 오천 미터에서 은메달을 땄다. 그러나 그것은 4년 뒤 헬싱키 올림픽에서 얻게 될 영광의 서막에 불과했다. 오천 미터와 일만 미터에서 금메달을 딴 자토페크는 마지막 순간에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우승했다. 최초로 달린 마라톤 경기였다. 그는 같은 올림픽에서 오천 미터, 만 미터와 마라톤의 금메달을 딴 유일한 선수이다. 그에겐 ‘인간 기관차’, 또는 ‘체코 기관차’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가 오천 미터에서 우승한 뒤 곧이어 아내 다나도 투창에서 우승했다. 친화력이 뛰어나고 여섯 개의 언어에 능통한 그의 집에는 전세계에서 많은 선수들이 찾아들었다. 경기장의 경쟁자들까지도 방문하여 “가장 즐겁고 행복한 집”이었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국가의 영웅이 되었던 그 부부는 공산당 내부에서 요직에 있으면서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68년에 ‘프라하의 봄’과 그에 이은 소련의 침공이 있었다. 어렸을 적 조국이 나치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분노를 삭이며 달리기에 몰두했던 그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민주화 세력에 힘을 더하며 ‘2000인 선언’에 서명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요직에서 물러난 정도가 아니라 우라늄 광산과 같은 곳에서 강제 노역에 처해졌다.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그는 복권되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얻은 병으로 앓다가 사망했다. 프라하에서 열렸던 장례식은 체코의 국장으로 치러졌지만, 애도의 물결은 국경을 훨씬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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