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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독재자의 연인?

등록 2017-07-27 18:31수정 2017-07-27 20:35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수영과 그림에 소질을 보이던 한 소녀가 무용에도 관심을 보여 유명한 무대 감독인 막스 라인하르트를 따라 유럽 도처에서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릎 수술을 받게 되어 무용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치료를 위해 의사를 만나러 가다가 <운명의 산>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그것이 레니 리펜슈탈이 영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다.

배우로 출연했던 활동사진 다섯 편이 계속 성공을 거둔 뒤 그는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였고, 그 결과로 <푸른 빛>이 나왔다. 스스로 영화 속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독일에서 평판이나 호오가 현격하게 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지라도 한 명의 열성적 팬을 만들었으니, 그가 당시 권력을 잡아가던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훗날 자신과 나치를 홍보하기 위한 영화의 제작을 레니에게 맡겼다.

그렇게 홍보 영화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가 태어났다. <의지의 승리>는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있었던 나치의 전당대회를 영광스럽게 묘사한 선전물로 나치 추종자들 70만 이상이 관람했다. <올림피아>는 우리에겐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으로 기억되는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물론 그 올림픽 자체부터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개최된 것이었다.

그 두 영화는 가장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영화 기법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그렇지만 기법이 혁신적이었다 하여 내용까지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레니의 영화가 히틀러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주장까지 나오며 종전 이후 체포되었지만, ‘단순 동조자’ 정도로서 전쟁 범죄와는 관련이 없다는 평결을 받았다.

그렇지만 나치와 관련된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데 협력했던 히틀러와의 관계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아직도 논란이 많다. 100살이 넘어 천수를 마감한 그도 역사의 희생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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