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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피털루 대학살

등록 2017-07-20 18:16수정 2017-07-20 20:40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영국에 기근이 덮쳤고,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인한 실업 사태는 고질적으로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곡물법이 도입되었다. 전쟁 중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때문에 곡물 수입이 어려워 가격이 폭등했는데, 전쟁이 끝나자 정상을 되찾았다. 그런데 지주들은 곡물 가격 하락으로 인한 이익 감소가 불만이었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던 의회에서 곡물법을 도입해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매긴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던 사람들이 1819년 8월 맨체스터의 세인트피터스필드, 즉 ‘성 베드로 광장’에 모였다. 의회의 개혁을 갈망하던 사람들과 참정권 획득에서 배제된 북잉글랜드 주민의 요청에 부응하여 ‘맨체스터 애국 연합’에서 조직한 평화 시위였다. 군중의 규모가 6만~8만에 달했다고 하니 엄청난 호응을 받았던 집회였다. 마차를 개조해 만든 연단에서는 유명한 급진주의자 헨리 헌트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지역의 판사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헌트를 비롯한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켜 달라고 군대에 요청했다. 영국 정규군 기병대는 물론 지역의 지주들과 그들이 고용한 하수인들 1500여 명이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군중에게 달려들었다. 그들 일부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무장도 하지 않았고 아녀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던 군중이었다. 다섯의 아녀자가 포함된 18명이 목숨을 잃었고, 700명 정도가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비꼬기 위해 4년 전에 있었던 워털루 전쟁에 빗대 ‘피털루 대학살’이라고 말한다.

소식을 전해 들은 시인 셸리는 “무정부의 가면”이라는 시를 썼다.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잠에서 깬 사자처럼 일어나라./ 정복되지 않을 숫자로 일어나라./ 잠에 들었을 때 당신들에게 씌워진/ 쇠사슬을 이슬처럼 땅에 내려치라./ 그대들이 많고, 그들은 적다.” 이 시는 30여 년 동안 인쇄가 금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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