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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교단과 이단

등록 2017-06-29 18:18수정 2017-06-29 20:55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중세 에스파냐에 부유하며 사람들에게 신망도 얻던 부부가 있었다. 그들의 근심은 단 한 가지,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아내는 부근 수도원으로 순례를 떠났다. 임신부의 수호성인인 ‘실로스의 성 도미니크’를 모시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태몽을 꾸었는데 횃불을 입에 물고 “세상에 불을 붙이려는 듯” 보이던 개가 배로부터 뛰어나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도미니크 교단을 세운 성 도미니크가 되었다. 에스파냐어로는 산토도밍고라 부른다. 도미니크 교단의 라틴어 이름을 ‘도미니’와 ‘카니스’로 파자하여 ‘신의 개’라 부르는 농담이 바로 이 꿈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진 돈을 주는 것은 물론 옷, 가재도구, 양피지에 기록한 소중한 문서까지 팔아가며 도왔다. 놀란 주변의 친구들에겐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이따위 죽은 가죽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그가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중세 말 기독교계의 타락에 경종을 울리며 청빈과 금욕을 강조한 탁발 교단이 여럿 생겼다. 대표적으로 프란체스코 교단과 도미니크 교단이 있는데, 도미니크 교단은 특히 설교를 강조했고, 그것을 위해 탁발승들은 학문적 소양을 충실히 쌓아야 했다.

도미니크 수도승들에게 요구되던 학문적 소양은 시대적 필요성의 결과이기도 했다. 교회의 타락에 대한 반발은 교회 외부에서도 일어났다. 특히 종교적 ‘순수’함을 내세우던 카타리파는 선 그 자체인 신은 영혼의 세계만을 창조했고, 물질의 세계는 사탄이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물질인 빵과 포도주에 의한 성사 자체가 신성모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은 이단으로 몰렸다.

당시 교황은 이단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이단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믿어, 그 일을 할 적임자로 도미니크를 지목했다. 도미니크는 그 목적을 위해 교단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교황이 그 새로운 조직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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