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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치명적 결투

등록 2017-06-22 17:52수정 2017-06-22 20:57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804년 7월11일, 미국 뉴저지주의 한적한 숲에서 결투가 벌어졌다. 현직 부통령 에런 버와 전 재무부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총알에 맞은 해밀턴은 다음날 사망했다. 이 결투는 두 사람 사이의 오랜 앙숙 관계가 막바지로 치달은 결과였다. 거기에는 정치적 대립은 물론 개인적 원한까지 개재되어 있었다. 아직 정당이 성립되지 않아 공화파와 민주파는 물론 연방파까지 유권자들의 표심에 호소하던 시절이었다. 해밀턴이 재무부 장관이던 시절 버는 해밀턴의 장인이었던 연방파 필립 스카일러를 물리치고 상원의원에 선출된 적이 있었다.

180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는 선거인단의 투표에서 최다 득표자를 대통령으로, 차점자를 부통령으로 선임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공화파의 토머스 제퍼슨과 버가 동수를 얻었다. 동수가 나올 경우에는 하원의 표결로 대통령이 결정되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연방파 의원들이 제퍼슨을 기피해 버가 대통령으로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해밀턴이 영향력을 발휘하여 결국 제퍼슨이 대통령으로, 버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804년 버는 뉴욕 주지사에 출마했다. 또다시 해밀턴은 온힘을 다해 버의 당선을 방해했다. 평소에도 버에게서 트집을 잡던 해밀턴이 언론에 버의 성격을 비하하는 글까지 실었던 것으로서, 결국 버는 낙선하였다. 마침내 버가 결투를 신청했고 해밀턴이 받아들였다. 그날 이른 아침 각기 나룻배를 타고 허드슨강을 건너 당시 잘 알려진 결투 장소로 향했던 것이다. 해밀턴은 생명을, 그가 속한 연방파는 생명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 결투는 버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당시 미국 북부에서는 결투가 위법이었기에 뉴욕과 뉴저지주에서는 버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궁극적으로 기소는 취하되었지만 그의 정치적 경력 역시 끝장이었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는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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