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가짜 뉴스’에 양심적 시민들까지 쉽게 동조하는 현상은 그동안 우리 사회 노동운동이 크게 잘못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식민지·분단·군사정부라는 매우 특별한 자본주의 이행 과정을 거치는 동안 노동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자리 잡힐 기회가 전혀 없었던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2009년 12월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였을 때, 한 일간지가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는 제목으로 보도한 1면 머리기사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분 늦게 도착, 서울대 면접 볼 기회 잃은 ○○고 1등 이○○군”, “교장의 분노, ○○이 인생에 대한 손배소송 내고 싶다”, “부모의 한탄, 자가용도 못 태워준 못 가진 부모가 죄인” 등의 소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다른 언론들이 앞다퉈 인용 보도했고 해당 학생에게는 각계의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철도공사는 본사 임원과 260개 역장이 이군의 입학금을 마련하고 전 사원을 대상으로 등록금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거나, 손배 소송을 맡아주겠다고 나선 변호사가 있다는 등의 내용들이 “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다”는 미담으로 이어졌다. 며칠 뒤 연세대는 최종 합격한 이군에게 ‘위기 극복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이 철도노조가 파업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들이 많았다. 언론중재위, 1심·2심을 거쳐 해당 언론사가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반론보도문을 게재하기까지는 2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실들에 대해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을 취재하는 언론” <미디어스>만이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을 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주장에 “언제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되풀이된다. 지난 대선에서 일부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민주노총에는 비정규직 조합원이 없다”는 주장이 유포됐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인 건 2008년 기아차 노조가 유일한데, 얼마 전 기아차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배제했으므로 민주노총에는 비정규직이 없다”는 구체적 내용까지 적시됐으니 상당수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17만명 중 30%가 비정규직이고, 기아차 비정규직은 분리됐어도 여전히 민주노총 소속이다”라는 ‘팩트’가 반론으로 제기됐으나 그 사실 여부는 뒤로한 채 “그렇다면 기아차 노조가 잘했다는 뜻이냐?”라고 논점을 확대시켰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본부에 찾아와 큰절을 올리고 있는 사진이 지금도 여전히 “민주노총에 가입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는 제목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정의롭고 양심적인 시민들은 “민주노총이 슈퍼 갑질을 한다”며 호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진은 민주노총 산하 비정규직 노조에서 징계를 받아 조합원 자격을 잃은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본부에 찾아와 호소하는 모습이다. 그 징계가 부당할 수는 있으나 민주노총 본부에서 산하 조직의 징계를 무효화하는 등 개입하기는 어려운 사안이다.

새 정부 들어 ‘천막농성’이 늘어나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골머리’를 앓는다는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천막농성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수구꼴통보수’들만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이나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새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이명박근혜 때는 다들 뭐 하셨나요? 진압봉이 무서웠나요? 문재인이 만만한가요?”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난 정부에서부터 치열하게 투쟁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비난에 힘입어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약 한 달 만에 농성천막 강제 철거가 시도되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가짜 뉴스’에 양심적 시민들까지 쉽게 동조하는 현상은 그동안 우리 사회 노동운동이 크게 잘못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식민지·분단·군사정부라는 매우 특별한 자본주의 이행 과정을 거치는 동안 노동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자리 잡힐 기회가 전혀 없었던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정신 나간” 행동이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는 것을 유효한 전술로 고민하고 가끔 그러한 선택이 시민들의 칭찬을 받기도 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원인은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그 정도 고민과 선택이라도 하는 조직이 민주노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