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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삶과 극

등록 2017-06-01 18:12수정 2017-06-01 20:34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이탈리아의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는 시와 단편소설도 많은 수작을 남겼지만 극작가로 훨씬 유명하다. 1934년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주최 측이 밝힌 근거는 “심리적 분석을 좋은 무대로 변형시키는 거의 마법적인 능력”이었다. 웃음을 자아내지만 비극적인 그의 희곡은 ‘부조리극’의 선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의 극은 개인사를 반영한다고 알려졌는데, 선대부터 이어지는 그의 이력을 보면 극보다 삶이 더 부조리하게 여겨진다.

피란델로는 19세기 중엽 시칠리아 섬 남쪽의 아그리젠토에서 태어났다. 유황 광산을 경영하던 아버지 쪽도, 전문직에 종사하던 어머니 쪽도 지역의 유지였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향한 리소르지멘토 운동 당시 그의 부모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버지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지배하던 시칠리아의 독립을 위해 나선 가리발디의 ‘일천 명 원정대’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통일이 된 뒤 맞부딪친 새로운 현실은 특히 어머니에게 환멸과 분노만을 남겨놓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피란델로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그는 결혼을 통해 삶에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세 자녀를 키우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그의 가정에 불운이 덮쳤다. 유황 광산에 큰 홍수가 나면서 재산이 거덜 나고, 아내가 가져왔던 지참금까지 사라졌다. 아내는 정신병에 걸렸고, 남편은 강사로 가정을 꾸려야 했다. 이전엔 무상으로 제공했던 원고에 고료를 청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내는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악화되었는데, 그럼에도 헌신적으로 간병했다.

그런 경황에도 꾸준히 발표한 글들로 성공을 거두었다. 무솔리니의 도움을 받아 로마 예술극장을 지휘하게 된 그는 “나는 이탈리아인이기에 파시스트”라고 말했었지만, 점차 파시즘이 문화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며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그뿐 아니라 파시스트당의 서기장 앞에서 당원 카드를 찢음으로써 그를 놀라게 했다. 그에겐 삶이 부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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