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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신준 칼럼] 새 대통령의 길- 술라 대 카이사르

등록 2017-05-14 18:24수정 2017-05-14 19:14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정치적 갈림길의 선택은 “지속가능성”으로 심판된다. 지속가능성은 과거에 매달리느냐 미래를 지향하느냐로 결정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카이사르는 이렇게 답하였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을 직시하는 것, 거기에 해답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새 대통령의 선출과 함께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빈 채로 열려 있고 그래서 무수히 많은 갈림길의 선택이 가능성으로 주어져 있다. 이런 무한대의 가능성이 담긴 선택에는 최소한의 단서가 필요하고 그것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박근혜의 실패도 사실 1960년과 1987년의 역사가 담고 있던 교훈을 발견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로마의 정치사에서 대비되는 두 인물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바로 술라와 카이사르이다. 이들 두 사람은 정반대의 정치적 갈림길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명문 귀족 출신으로 탁월한 능력의 무장이었다. 군사적으로 승승장구하였고 그 승리는 전사공동체였던 로마의 공동체 가치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로에도 불구하고 내전에 휘말려 위기를 맞았고 그것을 반전의 지렛대로 삼았다. 반대파를 무찌르고 절대 권력의 종신독재관에 취임하여 로마의 정치적 방향을 결정하였다. 그 방향은 두 사람 모두 공동체 가치에 부응하는 것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공동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고 교훈은 여기에 숨겨져 있다.

외견상 술라는 공화정, 카이사르는 제정을 지향한 것으로 대비된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추구한 로마의 공동체 가치는 영토적 확장에 있었다. 로마는 농업공동체였기 때문에 경제적 번영이 토지와 노동력(노예)의 확대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토적 확대는 무한히 지속될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었다. 영토의 확대는 국경선을 늘려서 수비 병력의 증가를 필요로 하지만 시민으로만 이루어진 병력은 무한히 늘어날 수 없었다. 영토의 확대는 시민의 소유를 늘릴 뿐 시민의 수를 늘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술라가 추구한 공화정은 로마가 영토를 확대해 나가던 시기의 것이었고 카이사르가 구상한 제정은 영토의 확대를 중단하고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자는 과거에 그 효능이 입증되었고 후자는 아직 미지의 것이었다. 술라는 성공한 과거가 맞닥뜨릴 한계를 보지 못한 반면 카이사르는 그 성공의 어두운 미래를 직시했던 것이다. 양자의 차이는 두 정치체제의 운명을 통해서 드러났다. 술라는 천수를 누리며 자신이 추구하던 정치체제를 직접 완성하였지만 그의 사후 공화정은 곧 소멸하였다. 반면 카이사르는 자신의 구상을 막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던 시점에 불의의 암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 구상은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를 통해 완성되고 이후 수백년을 이어갔다. 술라는 지속될 수 없는 것을, 카이사르는 지속될 수 있는 것을 추구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전해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정치적 갈림길의 선택은 “지속가능성”으로 심판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과거에 매달리느냐 미래를 지향하느냐로 결정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카이사르는 이렇게 답하였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을 직시하는 것, 거기에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해답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좌초는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박정희의 경제성장 신화)에만 매달렸고 보고 싶지 않은 것(친일, 독재, 민주화)을 제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었다.

새 대통령에게도 두 개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 보고 싶은 부분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 정책은 당연히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씨앗을 가꾸는 일일 뿐 미래의 선택은 비어 있다. 그래서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로마에서도 카이사르의 선택을 이해한 사람이 매우 드물었던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단지 국외자에게도 금방 짐작되는 한 가지 단서는 있다. 그가 계승할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정부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 실패는 의지에 반하여 결코 원치 않았던 경제적 결과 때문이었다. 의지를 배반하는 현실의 함정이 있다는 것, 보고 싶지 않은 이 진실을 직시할 때에만 새 대통령에게 카이사르의 길은 열릴 것이다. 그는 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이 새 대통령의 결정적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에게 거는 간절한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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