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잊지 못할 스승

등록 2017-05-11 18:22수정 2017-05-11 20:50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존스홉킨스대학교의 피터 젤라비치의 전공 분야는 계몽주의 이후의 유럽 지성사와 문화사이다. 그는 엘리트 문화와 대중문화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특히 관심을 가져 매스미디어 변천의 역사도 중요한 연구 영역이며, 그러한 연구의 과정에서 사회이론이나 문화이론을 역사적 자료에 적용시키려는 어려운 시도를 수행하고 있다.

<뮌헨과 연극 무대의 모더니즘>은 그런 시도의 결과로 나온 역작이다. 이 저작에서는 특히 20세기 전반기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을 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문예사조와 연결시킴과 동시에, 독일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결부시킨다. <베를린 카바레>는 대중문화와 정치가 맞닿는 아슬아슬한 영역을 다룬다. 카바레는 선술집과 비슷한 곳으로 대중가수들이 공연을 펼친다. 그곳에서 부르는 정치 풍자의 노래나, 노동자 고객들 사이의 대화는 정통적인 정치사 책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정치의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그가 텍사스주립대학교에 있을 때 두 차례 그의 수업을 들었다. 한 번은 교수와 일대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이른바 콘퍼런스 수업이었다. 근대 초 사상가들의 저작을 주로 읽은 이 수업을 통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더 감명을 받은 수업은 ‘모더니즘’을 주제로 한 세미나였다. 내용도 흠결 없었지만, 가르치는 그의 태도와 방식이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학부에서 하버드를 졸업했다는 한 학생이 계속 터무니없는 질문을 해댔다. 쉬는 시간에 나는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아이비리그도 별수 없다”며 그 질문자를 비웃었다. 재개된 수업에서 젤라비치는 그 질문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 녹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것들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날 배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가르치는 사람에게 이 세상에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는 귀중한 깨달음을 간직하게 되었을 뿐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1.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2.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3.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4.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사설] ‘명태균 게이트’ 수사, 이 검찰로는 안 된다 5.

[사설] ‘명태균 게이트’ 수사, 이 검찰로는 안 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