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윌리엄 하비는 해부학과 생리학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의사였다. 그는 혈액이 심장으로부터 두뇌와 신체로 전달되는 순환의 과정을 세밀하고 완전하게 묘사한 최초의 인물로서 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의학을 배웠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까지 여행하여 의학으로 유명한 파도바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거기에서 해부학의 권위자로 ‘발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브리키우스에게 배웠다. 하비는 스승으로부터 의학의 지식은 직접적인 실험과 관찰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비는 스스로 인체를 해부하여 연구하며 이론을 세웠다. 많은 동물을 생체해부 실험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실험과 관찰에 기반을 둔 연구는 기존의 학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니 하비는 스승에게 배운 방법으로 스승마저 비판하게 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방식은 근대 과학에서 설정한 연구 방법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점차 하비는 히포크라테스 이래 서양 의학의 정설로 추앙되던 갈레노스마저 넘어서게 되었다. 그의 저서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는 의학계의 과학혁명을 이끌었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이렇게 명성을 떨치던 하비는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의 주치의가 되어 부와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일 뿐으로 그는 계속하여 연구와 진료를 병행했다. 그의 합리적 태도는 의학이 아닌 다른 문제에도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이 난무하던 1634년 영국의 랭커셔 주에서 네 명의 여인이 마녀 혐의를 받았다. 그에게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의뢰되었다. 네 명은 하비의 보고서 덕분에 방면될 수 있었다. 국정 농단의 핵심에서 엉터리 보고서로 마녀사냥을 자행했던 그 의사들은 어디로 갔을까? 엄청난 혜택과 이권을 누리면서 권력자에게 봉사했던 그 의료인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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