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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분홍색 셔츠의 날

등록 2017-03-30 18:17수정 2017-03-30 21:14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세상엔 이상한 기념일이 많은데, 분홍색 셔츠를 입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색의 셔츠를 권하는 날까지 있다. 예사로 들으면 실소를 자아낼 일이라 하겠지만, 이날이 생긴 까닭을 알게 된다면 여기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우정과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2007년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작은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 남학생 제이드리언 코타가 분홍색 셔츠를 입고 학교에 왔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이른바 ‘왕따’를 당한 것이었다. 이에 분개한 동급생 데이비드 셰퍼드와 트래비스 프라이스가 나섰다. 그렇다고 그들이 피해를 가한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맞선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분홍색 셔츠 50장을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이 일을 알게 되자 어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먼저 노바스코샤의 주지사 로드니 맥도널드가 9월의 두 번째 목요일을 “교실 폭력에 맞서 일어서는 날”로 지정했다. 2008년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주지사 고든 캠벨도 나서 2월27일을 그 지역의 “교실 폭력에 맞서는 날”로 선포했다.

2009년에는 2월25일에는 남녀 학생들이 분홍색 셔츠를 입고 “학교 폭력은 여기서 끝내자”고 외쳤다. 그래서 이날을 “분홍색 셔츠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파랑색 셔츠를 입는 곳도 있다. 이렇게 지역에서 출발한 이날이 국제적인 기념일이 되었다. 2012년 이 취지에 공감한 국제연합에서 5월4일을 “교실 폭력에 맞서는 날”로 공식적으로 지정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캐나다는 물론 영국, 미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레바논과 같은 나라에서 이날 분홍색 셔츠를 입고 교실 폭력이나 왕따에 맞서는 캠페인을 벌인다. 미국에선 학생들 네 명 중 한 명꼴로 왕따를 당한다는 통계가 있는데, 그보다 상황이 더 심각할 것 같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아름다운 문화를 시급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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