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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행복한 날들을 재즈의 여왕과

등록 2017-03-16 18:33수정 2017-03-16 20:51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엘라 피츠제럴드는 ‘재즈의 여왕’, ‘노래의 퍼스트레이디’ 같은 최상급의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세 옥타브에 달하는 넓은 음역을 자랑함에도 음색이 맑고 발음이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높다. 동시에 즉흥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사용하여 의미가 없는 소리들로 마치 목소리가 악기인 것처럼 공연하는 스캣 창법의 대가다. 60년이 넘게 무대 생활을 하면서 그래미상을 14차례나 수상했으니 그녀에겐 ‘재즈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과분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의 소녀 시절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무관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그는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받다가 학교도 그만두고 길거리를 떠돌게 되었다. 유곽의 보초를 섰고, 마피아와 관련된 복권도 판매했다. 결국 단속반에 잡혀 감옥과 재활원을 전전하다가 또다시 길거리에서 전전하게 된 그는 자신의 이 시절에 대해 별로 말한 적이 없다.

할렘의 길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아폴로 극장에서 개최하는 ‘아마추어의 밤’에서 1등상을 받음으로써 정식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그는 전국을 순회하는 악단과 계약을 함으로써 도약할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비평가는 물론 청중이 그의 능력을 알아본 것이다. 악단을 지휘하던 칙 웹이 사망한 뒤 그의 이름이 붙은 악단까지 ‘엘라와 그의 유명한 오케스트라’로 개명할 정도였다.

가슴을 파고드는 그의 많은 노래들 중에서도 스캣 창법으로 부르는 곡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행복감에 젖게 된다. 의미 없는 고함들 같지만 함께 모여 절묘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촛불의 빛을 타고 번진 함성들이 뚜렷한 의미가 되어 실현된 것 같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지만 당분간은 행복감을 즐기고 싶다. 숨어 애쓰신 많은 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부끄러울 뿐이지만, 위정자들이 자행한 언어도단의 행태를 지적하는 글을 덜 써도 되는 것만으로 개인적으론 충분히 축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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