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9세기 초 디낭이라는 벨기에의 작은 마을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마가 끼었는지 죽을 뻔한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3층 건물에서 돌바닥으로 거꾸로 떨어져 몸을 가누지 못한 적도 있었다. 황산 섞인 물을 한 대접 마신 적도, 바늘을 삼킨 적도 있었다. 화약이 폭발하여 심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달아오른 쇠 프라이팬에 넘어져 옆구리를 심하게 데기도 했다. 니스 칠한 물건이 있는 방에서 잠을 자다가 중독되어 질식사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느닷없이 날아온 돌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 강에 빠져 간신히 익사를 면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어머니조차 “이 아이는 저주받은 아이야, 살지 못할 거야”라며 포기했고, 이웃에서는 그를 작은 유령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아이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귀에 귀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악기를 제조하며 호른의 디자인까지 새롭게 만들었던 부모님들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은 이 아이는 어린 나이에 이미 새로운 악기를 만들려는 꿈을 실천에 옮겼다. 15세에 새롭게 고안한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악기 경연대회에 출품했던 그는 그 악기들의 연주에도 솜씨를 보여 브뤼셀 왕립 음악학교의 연주자가 되었다. 음악학교를 떠난 뒤에도 그는 계속하여 새로운 악기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트럼펫과 호른을 결합시킨 것 같은 악기, 트럼펫과 트롬본을 합성시킨 것 같은 악기들을 만들었다. 그 악기들은 각기 색스혼, 색소트롬바로 불리는데, 색스혼은 지금도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있다. 그렇지만 그가 만든 가장 유명한 악기는 색소폰이다.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를 결합하여 가장 강력한 목관악기의 소리이자 동시에 가장 섬세한 금관악기의 소리를 만들어내 금관과 목관 사이의 공백을 메운 것이다. 색소폰은 물론 그가 만든 악기들은 그 저주받은 아이의 이름 아돌프 삭스를 기리고 있다. 오늘날에도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가 매년 디낭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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